상황이 이렇게 흐르면 ‘분위기가 반등하겠구나’ 생각할 법도 한데, 시장 한켠에서는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위기설’ 내지는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인수합병(M&A) 시장, 나아가 자본시장의 한 축을 맡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들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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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지난 2일 발표한 기관전용 PEF 현황(올해 3월 기준)에 따르면 올해 신설된 PEF는 36개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49개와 비교하면 숫자가 3분의 1가량 줄었지만, 신규 자금 모집액은 도리어 늘었다.
신설 PEF의 신규 조달 자금은 총 5조162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월(3조9336억원)과 비교해 31%가량 증가한 규모다. 금액이 1년 만에 크게 늘면서 금리 인상 우려가 이제는 사라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펀드 수는 30% 가까이 줄었는데, 금액은 30% 넘게 늘었다는 점에서 몇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지난해보다 출자 규모가 늘었다는 건 분위기가 나아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줄어든 펀드들이 해당 자금을 흡수했다는 것은 결국 믿을 만한 운용사들에게 자금이 몰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스틱인베스트먼트가 1조2800억원 규모의 ‘스틱오퍼튜니티 3호’ 펀드를 결성한 데 이어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 6684억원 △UCK파트너스 6360억원 등의 대형 펀드가 조성됐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펀딩 상황임을 고려하더라도 세 운용사의 펀딩 합계가 전체 자금의 절반 가까운 수치를 차지했다는 점은 되새겨볼 대목이다. PEF 출자금 증가 소식에 들떠 있는 운용사들이 생각보다 적은 이유다.
실제로 업계 얘기를 종합하면 펀딩을 제때 하지 못한 중소 PEF 운용사들은 생사기로에 서 있다. 출자 콘테스트에서도 대형사에 밀려 실패를 거듭하고, 급기야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다녀오라’ 얘기를 건넨 운용사도 있다고 한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무급 휴직을 다녀오라는 건 휴가기간 동안 다른 운용사 이직을 알아보라는 일종의 시그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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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해외에서도 최근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늘었다. 자산운용규모 5980억 달러(780조원)로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사모펀드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마크 로완 아폴로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3일(현지시각) “사모펀드(PEF)의 호황기는 끝났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고금리에 저성장 국면이 맞물리면서 PEF 운용사가 돈을 벌 수 있는 요인들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게 핵심이다.
로완 CEO는 최근 몇 년은 코로나19 펜데믹에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과감한 투자로 큰 돈을 벌 수 있던 시기였다고 정의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기준 금리가 급등하고 화폐 발행이 줄며 유동성이 메마른 요즘 시점에는 그렇지 않다고 평가했다.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울 때가 아니라, 이전에 투자했던 것을 까먹지 않는 리스크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묻어나는 발언이다.
싱가포르 국부펀드(GIC)의 제프리 젠수바키 최고투자책임자(CIO)도 같은 시기 유사 발언을 했다. 그는 “PEF 업계에 도움이 돼 온 많은 것들이 떠났고, 이른 시일 내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운용규모(AUM)만 900조원에 달하는 GIC 수장이 당분간 PEF 업계에서 업사이드(상승여력)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글로벌 투자 기조가 올해를 기점으로 큰 전환점을 맞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최근 국내 출자 흐름을 봤을 때 기관의 선택을 받은 5~10개의 운용사가 출자금을 대거 확보하고 투자에 나서는 분위기가 연내 펼쳐질 것으로 보고 있다. PEF 운용사 간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초대형 바이아웃 대신 지분을 사들여 수익 구간에 되파는 전략을 중용할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해외 출자만 받던 대형 운용사가 국내로 들어오고, 글로벌 운용사들도 국내 기관 자금을 받으려고 국내 콘테스트에 참가하는 상황이 요즘”이라며 “일부 운용사들이 자금을 대거 확보하고 낮은 밸류에이션에 세컨더리나 바이아웃에 나서면서 시장을 주도하는 흐름이 하반기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