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제는 1997년 한 신문사의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총 4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었다. 그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한 고등학교에서 문예창작과 시 창작 과목 실기 교사로 근무했다. 이곳에서 배용제는 ‘예술’과 ‘창작’을 내걸고 10대의 어린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년간 성적 언동을 반복했다.
배용제는 사실상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10대 학생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장해 말하기도 했다. “문단과 언론에 아는 사람이 많다. 내가 사람 하나 등단을 시키거나 문단 내에서 매장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등의 과장된 발언을 등단을 꿈꾸던 학생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고 배용제에 대한 반항은 더 어려워졌다.
여기에 학생들에게 “나에게 배우면 대학에 못 가는 사람이 없다”, “나는 편애를 잘하는 잘 보여라”, “대학 교수보다도 나에게 배우는 것이 낫다” 등의 발언을 지속적으로 하며 학생들이 자신에게 잘 보여야 하는 이유를 지속적으로 반복해 설명하기도 했다.
◇‘은교’ 언급하며 “나중에 딸 낳으면 소개해달라”
배용제는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성적 언동 등 부적절 행동을 반복했다. 학생들의 외모에 대해 품평을 하거나, 학생들의 복장이나 성에 대해 수위가 높은 발언을 자주 했고, 장난을 친다며 학생들에게 신체접촉도 수시로 했다. 여학생들에게 수시로 ‘사귀자’는 말도 했다. 배용제 스스로 학생들에게 “사귀자고 말한 학생이 백 명은 된다”고 이를 자랑삼아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이 같은 행동으로 여러 차례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학생들 앞에서 여성비하 발언을 등 지속적으로 했다가 부장교사로부터 조심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적을 받은 배용제는 반성 대신 학생들에게 폭언을 한 후 학교를 무단으로 결근하기도 했다. 이후 익명으로 진행된 학생과 학부모 만족도 조사에서도 ‘학생을 성적인 대상으로 쳐다본다’, ‘학생 엉덩이 등을 친다’, ‘신체접촉을 은근히 시도한다’, ‘외모에 대한 지적을 한다’ 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배용제는 계속되는 지적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상대로 2012~2014년 사이 학교 등지에서 수차례의 강간과 추행 범행을 반복했다. 그의 변태적 행위와 더불어 엽기적 발언도 반복했다. “나는 너의 가장 예쁜 시절을 갖고 싶다”, “네가 정말 좋아서 못 참겠다”, “손금을 보면 XX(중요부위) 모양을 알 수 있다” 등이었다.
또 그는 학생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며 배용제는 ‘예술’과 ‘창작’을 들먹이기도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문인이 되려면 성적으로 개방돼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시·소설의 세계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며 “세계를 넓히려면 성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
70대 노시인의 10대 여학생에 대한 성적 욕망을 담은 작품인 ‘은교’를 자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은교 같은 아이를 가르치고 싶다. 은교 같은 아이와 연애를 할 것이다”, “나도 일흔이 되면 소녀랑 사귈 것이다. 너희가 딸을 낳아 나한테 소개시켜 달라” 등의 황당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배용제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학생들은 성인이 된 후 배용제의 영향력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시작하며 자신이 겪은 일들이 성폭력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그리고 서로서로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 알지 못했던 이들은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힘을 합쳤다.
◇“또 다른 피해자 만들지 말아야”…피해자들 힘합쳐 폭로
이들은 2016년 10월 소셜미디어에 배용제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을 올린 후, 배용제를 경찰에 고소했다.
배용제는 폭로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발하는 내용에 대해 참회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피해를 당한 아이들과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속죄와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고교에 재직하던 수년 전부터 그만둔 후까지 폭력이라는 자각도 없이 단 한 번의 성찰도 하려 하지 않은 채 많은 일들을 저질렀다”며 “시를 가르친다는 명목하에 수많은 성적 언어로 희롱을 저질렀고 수많은 스킨십으로 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배용제의 사과는 거짓이었다. 배용제는 경찰조사에서부터 “피해학생들에게 일체의 추행이나 성희롱을 하지 않았고, 일부 학생과 성관게가 있었지만 이는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경찰에서 구속된 후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후에도 같은 주장을 폈다.
배용제는 법정에서도 혐의를 부인하며 “시집을 오랜 기간 출간하지 않았고 문단 내에서 아웃사이더에 불과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난 친근한 선생님이었다”며 “피해학생들이 뭉쳐서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는 기어코 피해학생들을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내기도 했다.
1심은 “피해학생들이 피해사실을 상당히 구체적이로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이들은 더 많은 성폭력이 있었지만 시점이나 다른 배경정보를 통해 특정할 수 있는 부분만 공소사실에 포함됐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피해학생들이 피고인을 모함할 이유도 없다”고 배용제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배용제는 등단을 위해 자신에게 의지하는 미성년 제자들의 취약한 심리 상태를 이용해 자신의 왜곡된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객체로 전락시켰다. 그럼에도 혐의를 부인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진지한 반성은커녕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있다”며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배용제는 1심 판결에 대해 “학생들과 격의 없이 친구처럼 지냈다. 성적 언동을 한 적이 없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도 “피해학생들의 1심 증언을 비롯한 증거들만으로 피고인의 혐의를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할 수 있다”며 배용제의 항소를 기각했다. 배용제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018년 6월 상고를 기각하고 형을 그대로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