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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는 가족 구성원을 호주에게 종속시켜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부정하고 일률적으로 순위를 정함으로써 평등한 가족 관계를 해쳤다. 특히 여성은 호주제 체제 하에서 주체적인 존재가 아닌 예속적인 존재로만 규정됐다. 혼인 전에는 아버지가 호주인 호적에, 결혼하면 남편이 호주인 호적에,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이 호주인 호적에 올라야 하는 예속적인 존재였다. 또 호주제는 호주 승계 순위를 호주의 ‘아들→손자→미혼인 딸→미혼인 손녀→배우자→어머니→며느리’ 순으로 정하면서 자연스레 남아 선호 사상을 조장했다. 부가(父家) 입적과 부성(父姓) 강제 계승을 통한 가족 제도 유지는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를 반영하지 못해 한 부모 가족, 재혼 가족 등 갈수록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를 모두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만들었다.
여성단체들의 주장처럼 실제 호주제는 여러 병폐를 낳았다. 대표적인 폐단 중 하나는 부모 중 아버지만이 법정대리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부부가 이혼을 하고 어머니가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설사 어머니가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가졌다 해도 친부의 동의가 없다면 자녀는 새아버지의 호적에 올라가지 못했다. 여성이 이혼했다면 친어머니라 해도 아이와 법적으로 ‘동거인’일 뿐 친자 관계가 기재되지 않았다. 혈연 관계임을 인정받지 못했던 것으로, 이혼한 친어머니는 부모로서의 권리를 그 어떤 것도 행사할 수 없었다.
양성평등이라는 시대 흐름에 따라 1999년 5월 여성단체연합이 호주제폐지운동본부를 발족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호주제 폐지 운동은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에서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어 3월 2일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 통과에 이르렀다.
호주제 폐지는 새로운 신분 공시 제도 등을 감안해 새 신분등록제가 도입될 때까지 약 2년 8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갖고 2008년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호주제 폐지에 따라 사라지는 호적부 대신 ‘1인 1적부’ 형식의 가족관계등록부가 도입됐다. 민법 개정에 따라 호주제 폐지와 함께 동성동본 혼인 금지 제도도 폐지되고 ‘8촌 이내 혈족 등의 혼인을 금지’하는 근친혼 등의 금지 제도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2005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 표결에 앞서 진행된 찬반 토론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김용갑 당시 의원은 반대 토론자로 나서 독설에 가까울 정도로 호주제 폐지의 부당함을 역설했다. 그는 “호주제는 수천 년을 이어 온 우리 전통의 가족 제도이며 국민 생활의 기본 질서”라며 “그런데도 호주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은 전통적 개념의 가족을 해체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호주제 폐지는 말 그대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며 “개혁이 아니라 최악의 개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남성 국회의원들을 향해 “속으로는 반대를 하는 의원들조차 줏대도 없고 소신도 없이 일부 여성들의 주장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며 “차라리 달고 다니지 말고 떼고 다니라”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