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계 거목 명예살인한 성폭행 무고사건[그해 오늘]

김영환 기자I 2022.11.14 00:03:00

30대 무속인이 80대 명예교수 허위 성폭행 고소
검찰 수사 발표 이전에 여학생회·학교의 섣부른 조치 문제
A교수 끝내 복직 않고 사건 3년만에 별세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2006년 11월 14일. 38세의 여성 무속인이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인 A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경희대 성폭력상담소에 신고했다. 당시 A교수는 80세의 노령이었다. 무속인은 당시 상황에 대한 녹음과 정액 샘플을 제출하면서 A교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해 9월 26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게시판에 총여학생회 해산 결정투표 관련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사진=뉴스1)
A교수는 한국 무속 문학의 권위자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A교수의 연구 과정에서 비롯됐다. A교수는 50년 가깝게 3000명이 넘는 무속인을 만나면서 한국의 무속에 대해 연구했다. 이 여성도 자문을 준 사람 중 하나였다.

A교수는 혐의를 부인했으나 사건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다. 고소에 대한 검찰의 발표가 이뤄지기 전에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발빠르게 나섰다. 정액이 DNA가 일치하고 녹취록과 상해진단서 등의 명확한 증거를 이유로 학교 측에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학교 당국은 처음에는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취했으나 언론으로 해당 사안이 보도되고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이듬해인 2007년 1월30일 A교수를 직위해제 처분했다. 한국 무속을 학문의 경지로 올렸던 노학자의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러나 사태가 묘하게 돌아갔다. 검찰이 무속인의 고소 내용을 허위라고 결론내린 것이다. 녹취록은 짜깁기 돼 있었고 정액 샘플도 A교수의 것이 아니었다. 검찰은 오히려 무고죄로 무속인을 고발했다.

A교수는 직위해제 처분이 내려진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2월 26일 무혐의를 받았다. 검찰조사에 따르면 무속인이 A교수 연구실을 방문했지만 A교수가 만나주지 않자 실랑이를 벌이다 경미한 부상을 입은 것을 빌미로 성폭행했다는 허위 주장을 펼쳤다.

섣부른 처분에 따른 댓가는 혹독했다. 학교 측은 A교수에게 복직을 요청했으나 끝내 교단에 복귀하지 않았다. 당시 입었던 상처가 너무 컸다. A교수는 크나큰 상처를 안은 채 2009년 7월 14일 8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태를 키운 총여학생회에도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사과와 퇴진을 촉구하는 여론이 일었으나 총여학생회는 끝내 사과문을 내지 않았고 오히려 재신임 투표를 통해 정치적 입지 유지에만 신경썼다. 총여학생회는 지난해 9월 27일 폐지를 놓고 치러진 투표에서 63.45%의 찬성표를 받아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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