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교수는 혐의를 부인했으나 사건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다. 고소에 대한 검찰의 발표가 이뤄지기 전에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발빠르게 나섰다. 정액이 DNA가 일치하고 녹취록과 상해진단서 등의 명확한 증거를 이유로 학교 측에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학교 당국은 처음에는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취했으나 언론으로 해당 사안이 보도되고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이듬해인 2007년 1월30일 A교수를 직위해제 처분했다. 한국 무속을 학문의 경지로 올렸던 노학자의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러나 사태가 묘하게 돌아갔다. 검찰이 무속인의 고소 내용을 허위라고 결론내린 것이다. 녹취록은 짜깁기 돼 있었고 정액 샘플도 A교수의 것이 아니었다. 검찰은 오히려 무고죄로 무속인을 고발했다.
A교수는 직위해제 처분이 내려진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2월 26일 무혐의를 받았다. 검찰조사에 따르면 무속인이 A교수 연구실을 방문했지만 A교수가 만나주지 않자 실랑이를 벌이다 경미한 부상을 입은 것을 빌미로 성폭행했다는 허위 주장을 펼쳤다.
섣부른 처분에 따른 댓가는 혹독했다. 학교 측은 A교수에게 복직을 요청했으나 끝내 교단에 복귀하지 않았다. 당시 입었던 상처가 너무 컸다. A교수는 크나큰 상처를 안은 채 2009년 7월 14일 8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태를 키운 총여학생회에도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사과와 퇴진을 촉구하는 여론이 일었으나 총여학생회는 끝내 사과문을 내지 않았고 오히려 재신임 투표를 통해 정치적 입지 유지에만 신경썼다. 총여학생회는 지난해 9월 27일 폐지를 놓고 치러진 투표에서 63.45%의 찬성표를 받아 폐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