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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큐레이터·미술평론가] 이제 기차는 ‘칙칙폭폭’ 하며 달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기차장난감을 쥐어줄 땐 아직도 ‘칙칙폭폭 빽~’ 하는 소리를 들려준다. 고속열차가 날아다니는 21세기에도 역사의 유물로 사라진 증기기관차가 증기를 내뿜으며 달릴 때 내는 그 소리는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에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19세기 증기기관차의 등장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과 화물을 한꺼번에 옮길 수 있는 거대한 위용은 이미 시작된 산업혁명을 가속화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한계도 확장시켰다. 이곳에서 저곳까지 며칠씩 걸렸던 거리를 단 하루만에 갈 수 있다면 생각의 범위와 과정 역시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 속도, 인간이 걷거나 뛰어서는, 혹은 마차를 타더라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기차의 속도는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그래서 19세기 사람들은 기차가 달리는 것을 구경하거나 기차역에서 기차가 오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을 일종의 여가로 즐기기도 했다. 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간다면 다른 인생이 시작될 것인가, 빠른 기차에 앉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등을 상상하며 백일몽을 꾸는 것도 그 시대의 취미생활이었다.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는 1843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GWR)의 기차 일등석을 타고 창밖으로 머리를 한껏 내민 채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봤다. 마침 안개가 낀 습한 날이었다고 한다. 기차가 내뿜는 증기와 안개가 뒤섞이며 대기는 혼란스럽고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았을 것이다. 터너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비, 증기, 그리고 속도’(1843~1844)를 그렸다.
이 그림은 첫눈에는 추상화처럼 보일 정도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한곳을 향할 수밖에 없는데, 철길을 밟고 달리는 기차가 바로 화면 오른쪽에서 돌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의 제목처럼 이 화면의 주인공은 기차가 지나면서 만들어내는 대기의 혼란인 것처럼 보인다. 툭툭 끊어지는 붓자국으로 형상화한 잿빛과 황금빛 공기는 석탄을 연료로 한 기관차가 내뿜는 매연일지도 모르겠다.
◇안개 자욱한 날, 기차가 내뿜는 황금빛
흐릿하나마 그림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깊은 원근법을 적용한 화면 오른쪽에는 철길이 놓인 다리가, 왼쪽에는 고대 로마시대 양식으로 보이는 옛 다리가 보인다. 얼룩으로 가득찬 것 같은 화면 속에서도 옛 다리는 아치형 벽돌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다. 마치 옛것과 새것을 대비하려는 것처럼 옛 다리는 저 멀리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듯이 보이고, 새 다리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림의 또 다른 비밀은 다리와 다리 사이에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지만, 양산을 쓰고 나룻배에 탄 사람들도 있고,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한무리의 사람도 숨어 있는 것이다. 요즘이야 지나가는 기차가 신기한 일도 아니고, 기차 안에 탄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 일도 없지만, 예전에는 모르는 이들이 탄 기차에라도 열심히 손을 흔들어줬다. 아쉬워서도 아니고 반가워서도 아니고, 기차를 보면 그냥 신이 났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인간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 것 같다는, 우리의 앞날에 희망이 비친다는 막연한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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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열광했던 것은 터너만이 아니었다.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 역시 오고 가는 기차에 심취했다. 그는 파리 생 라자르역에 허락을 구하고 그곳에서 ‘노르망디 기차의 도착, 생 라자르역’(1877)을 포함해 무려 12점의 그림을 그렸다. 생 라자르역은 유리 천장을 가진 철골구조의 건물로 당시로선 첨단의 외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천장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기차노선이 한둘도 아니고 열네 개에 이르는 대형 기차역이었기에 출발하는 기차와 도착하는 기차를 하루종일 볼 수도 있었다. 모네는 증기기관차가 내뿜는 열기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하늘빛을 그대로 투과하는 기차역의 혼란스러운 풍경에서 동시대를 읽었다. 모네의 눈으로 본 기차와 기차역은 분명 시대의 새로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잡다한 인간사는 그저 한두 번의 붓질로 ‘사람들이 이 풍경에 함께 있음’ 정도로만 표현하는 게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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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근대화의 상징이자 불평등의 상징으로
대신 기차가 오가는 풍경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 ‘사람’을 표현했던 화가는 귀스타브 카유보트(1848∼1894)였다. 그의 ‘유럽의 다리’(1876)에서는 생 라자르역사로 연결된 신축 철교 위에서 기차가 지나다니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새 시대의 철교에서 턱을 괴고 저 멀리 증기를 내뿜으며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난간에 기대고 선 남성 외에도 다리를 따라 몇몇이 더 보인다. 한가롭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날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귀족신분제가 위력을 잃고 부르주아 시민사회가 건설되면서 자금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이른바 ‘여가’를 즐기게 된 것이다. 턱을 괸 채 하릴없이 기차가 오가는 것을 구경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 남성은 시간 가는 것을 촘촘히 헤아리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또 언젠가 생 라자르역에서 기차를 타고 프랑스 북서부를 여행하리라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과연 기차의 어느 칸에 탑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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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차는 일등 객실, 이등 객실, 삼등 객실을 구분했는데, 이처럼 각기 다른 기차 내 풍경에 관심을 가진 이는 오노레 도미에(1808∼1879)였다. 그는 일등 칸에 탄 사람들이 넉넉한 자리를 차지하고 여유 있게 풍경을 바라보거나 신문을 읽는 모습도 그렸고, 삼등 칸을 오르며 자리를 차지하려 다툼을 벌이는 장면도 그렸다. 터너와 모네, 카유보트 등이 다소 낭만적으로 기차와 기차역, 기차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그릴 때, 도미에는 신분에 따라 기차의 객실이 나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도미에의 ‘삼등 열차’(1862∼1864)에서는 객실에 빼곡히 앉은,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이 보인다. 입성이 허름해 보이는 젊은 여인은 아기를 품에 안고, 머릿수건을 둘러쓴 노인은 아마도 먹을거리가 들어 있을 바구니를 소중하게 붙들고 있다. 그들 옆의 어린 소년은 노인에게 기대 잠들어 있고, 이고 가야 할 짐이 들었을 법한 나무상자도 보인다. 당시 기차의 삼등칸은 시골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이들에게서는 차창 밖 풍경의 낭만이나 여행의 즐거움 따윈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이 기차가 데려다 줄 낯선 곳에서의 다음 인생을 굳세게 살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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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신문물이던 때는 한참 전에 지났다. 지금 우리는 19세기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세계의 입구에 또 서 있다. 이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 속에서 서로 이야기하고, 마음을 전하고, 일거리를 주고받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는 ‘메타’ 공간이 우리 삶을 바꿀 것이라고 하니 하루하루 사는 것이 한 걸음씩 뒤쳐지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미래를 맞게 될지 일단 구경을 해 봐야지, 달리는 기차를 보며 신나서 손을 흔들던 사람들처럼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믿어볼 수밖에. 일등칸이든 삼등칸이든 주어진 자리에 앉아 다가오는 풍경이 얼마나 새로울지 호기심을 잃지 않고 기대해보기로 한다.
△이윤희 큐레이터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