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채 2년물 9월말 0.22%서 두 달 만에 0.64%
연방기금 선물시장 추정, 기준금리 내년 2.8회 인상
연준 내부서 "테이퍼링 가속화 해야" 주장까지
빨라진 ''긴축 시계'', 장기 인플레 묶으려는 파월 의도일 수
10년물 BEI, 상승 꺾여…"저금리 유지 ''골디락...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여기저기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잘못된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물가 지표가 이렇게 높게 나오는데도 ‘일시적(Transitory) 인플레이션’이나 ‘(기준금리 인상에) 인내심을 가지겠다’는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쓴소리가 먹혔던 것인지 연임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되지 않도록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장은 내년 기준금리 인상 횟수 전망을 급하게 올리며 연준의 변화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놀란 것으로 해석할 만한 대목이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인플레가 적당히 높은 수준에서 머물러 있고 경기도 살아나면서 기준금리는 올리지 않는, 일명 ‘골디락스’로 가기 위해 치러야 할 작은 희생 같은 거란 얘깁니다. 이 맥락에서 보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연준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속도를 애초 계획보다 올릴 가능성도 꽤 커 보입니다.
| (출처=김성모 작가, 인터넷 커뮤니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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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Hope is not strategy)” 비판 수용한 파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미국채 2년물 금리는 지난 9월 말 0.22% 수준에서 지난 25일 0.64%까지 올랐습니다. 2달 만에 무려 42bp(1bp=0.01%포인트)가 치솟은 것입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연방기금 선물시장으로 추정한 내년 미국 기준 금리 인상 예상 횟수는 2.8회까지 상승했습니다. 10월 전만 하더라도 1회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파월보다도 비둘기파적(dovish)이란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가 연준 의장으로 임명되지도 않고, 11월 FOMC 의사록을 보니 당시 회의가 끝나고 파월 의장이 했던 말과는 다르게 매파적인(hawkish) 얘기들이 오갔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그는 당시 “우리는 (금리 인상에 대해) 인내심을 가질 수 있다”며 금리 인상이 시기상조라는 식의, 회의 내용과는 다른 뉘앙스를 전달했습니다. 시장은 ‘연준이 이러는 걸 보니 정말 기준금리를 크게 올리겠구나’란 생각한 셈입니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5일 새벽 11월 FOMC 의사록이 공개되면서 시장에서도 관심이 모아진 상황”이라며 “인플레에 대한 일시적 평가는 유지되지만, 공급망 병목현상, 에너지가격 상승이 물가 압력을 가중시켰으며 다수 의견으로 높은 인플레가 더 지속적일 가능성을 지적하는 등의 우려를 언급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어떤 위원은 테이퍼링 가속화를, 여러 명의 위원은 높은 인플레가 지속되면 빨리 금리 인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며 “시장에선 연준이 매파적 물가인식을 확대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파월의 연임과 내년에 바뀔 연준위원들도 매파적 성향으로 구분되는 만큼, 긴축 시계가 빨라지는 것으로 인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습니다.
|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방은행 총재. (출처=블룸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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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조는 있었습니다.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연준을 비판했습니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연방은행 총재의 얘기는 폐부를 찌릅니다. 지난 15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3~4%로 높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그는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Hope is not strategy)”라고 말했습니다. 관리를 해야 할 중앙은행이 ‘베팅’을 하면 안 된단 면에서 비판은 타당한 것 같습니다.
KB증권에 따르면 취업 정보 사이트 인디드(Indeed)는 작년에 은퇴했지만, 현재 일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작년 6월 2%에서 점차 올라 2.6%까지 상승했다고 전했습니다. LA항의 수입 컨테이너 개수도 벌금이 부과된 지난달부터 7만1000개가 감소했고, 벌금을 받을 정도로 오래 항구에 방치된 컨테이너 수도 같은 기간 29% 감소했다고도 합니다. 반면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6.2% 올라 1990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병목 현상은 완화되고 있지만 어찌됐든 물가는 오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공급 병목 현상이 내년 상반기부터 완화될 걸로 전망하지만, 어디까지나 전망일 뿐입니다. 더들리 전 총재가 강조하고 싶었던 건 이렇게 물가 상방 압력이 계속 커지고 있는데, 어떻게 중앙은행이 이를 못 본 척 할 수 있느냐일 듯합니다.
다행인 것은 약간의 시차는 있었지만 연준, 특히 파월 의장이 이같은 비판을 받아들이고 태도를 바꾸고 있단 것입니다. 파월 의장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말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는 세간의 평가로 볼 땐 이미 생각은 매파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의사소통이고 ‘말’입니다. 22일(현지시간) 다시 한번 ‘세계 경제 대통령’이 된 파월 의장은 “물가 상승이 음식, 주택, 교통 같은 필수품의 높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이들과 가정에 타격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인플레이션 고착화를 막기 위해 우리의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실질금리 상승을 희생하면서 장기 기대인플레를 붙잡아 놓은 파월
일련의 과정은 12월 FOMC에서 테이퍼링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단 전망에 힘을 싣습니다. 물가에 대응해야 한다는 관성이 테이퍼링 규모 확대까지 이어질 수 있단 얘깁니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는 강한 고용과 인플레 상승을 감안하면 테이퍼링을 가속해야 한다며 내년 1분기 종료해야 한단 의견을 냈다”며 “현실화된다면 애초 연준이 선언했던 내년 6월 종료·월 매입금액 150억달러씩 축소에서 매월 300억달러씩 줄여야 하는 것으로 바뀌는데, 그러면 시장은 일시적으로나마 유동성 위축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분석했습니다.
| 라파엘 보스틱 애틀란타 연방은행 총재. (사진=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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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준의 긴축 가속화 움직임이 결국 기준금리 인상 지연이란 골디락스의 초석을 만들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보스틱 총재는 테이퍼링을 빨리 진행해서 일찍 마치면, 내년에 나올 지표들을 보고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들리 전 뉴욕 연은 총재도 금리 정책 대응 유연성을 떨어트려 가면서까지 자산매입을 지속하고 있는(테이퍼링 속도를 내지 않는)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이는 연준이 내년 6월 테이퍼링 종료란 현재 목표보다 더 빨리 테이퍼링을 진행한다면, 금리 인상기까지의 시간을 벌게 되는 장점이 있다는 얘깁니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그때 가서 정말 공급 병목과 인플레가 수그러드는 것이고, 차선은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금리 인상이란 물가 통제 카드를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테이퍼링 도중에 금리까지 올리는 최악을 면할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물가 통제가 안 된다? 시장에 이보다 더 최악은 없습니다. 최선대로 간다면 오히려 기준금리를 안 올려도 됩니다. 즉 시장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 경로 기울기는 가팔랐다가(짧은 기간 급격히 인상) 눕게 될 것입니다.
| 미국채 10년 물가연동국채 금리 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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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FOMC에서 테이퍼링 계획이 변경하지 않더라도 연준은 소기의 목적을 이미 달성한 상태입니다. 11월 FOMC 의사록이 공개되면서, 파월이 인플레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장기물의 실질금리가 오르는 대신 기대인플레이션은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10년물 실질금리 대용으로 쓰이는 물가연동국채 금리는 지난 9일 마이너스(-)1.17%에서 24일 -0.97%까지 상승한 반면, 같은 기간 기대인플레이션(BEI)은 2.63%에서 2.61%로 소폭 내렸습니다. 지난 9월 말 2% 초반대부터 오르던 추세가 잠잠해진 것입니다. 명목금리는 실질금리와 기대인플레이션으로 분해되기 때문에, 명목금리가 고정된 상태에선 실질금리가 오르면 기대인플레는 낮아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연준이 장기물 기대인플레이션을 하향 안정화하려는 의도로 ‘매’를 적극 드러냈다는 해석이 가능한 셈입니다.
| 미국채 10년물 기대인플레이션 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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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연준은 코로나19 이후 평균물가목표제(AIT)를 꺼냈는데 이는 물가보다 고용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게 골자로, 기본적으로 인플레를 내버려두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며 “그런데 지금 상황은 물가 상승이 가계 소득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우려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 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전달하면서 실질 금리를 올리는 대신 장기 기대인플레를 더 이상 치솟지 않게 관리하는 게 필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연준은 잘 대처하고 있고 시장도 연준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듣는 걸로 보인다”며 “12월 FOMC에서 테이퍼링 가속화 발표가 나온다면, 중장기적으로 볼 때 저금리를 오래 유지하며 자본시장의 골디락스를 가져올 수 있는 ‘룸(여유)’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