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이미 가업승계 목적 M&A가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국 역시 고령화에 따라 중소기업 창업주 연령대가 앞으로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 업계에선 가업승계 목적의 M&A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고 채비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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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기업 재미없어요…차라리 현금 상속”
자신이 일군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결국 매각으로 선회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고령화에 따라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가 예고되는 상황에서 창업주 2세대들이 기업을 상속받지 않기를 원하면서다. 최근 한국M&A거래소(KMX) 조사에서 매도희망 기업 10곳 중 1곳은 가업상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도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으로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 가운데 네 곳 중 한 곳(26.2%)은 경영자(CEO)가 5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업 역시 다섯 곳 중 한 곳(20.6%)은 경영자가 50대 이상이었다.
IB업계 관계자는 “한국 제조업 1세대 창업주들이 이제 슬슬 은퇴를 앞둔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데, 자녀들은 부모님 기업과는 무관한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기업 물려받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승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녀들이 부모님 기업을 물려받지 않으려는 이유는 뭘까.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요즘은 자식도 한두 명밖에 없는 데다가 자녀들 입장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던 기업을 매력적으로 느끼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가업승계 M&A의 상당수는 이른바 ‘굴뚝산업’으로 불리는 제조업 기업에 해당하는데 자녀 세대에게 제조업은 성장이 둔화하고 운영하기도 쉽지 않은 ‘재미없는’ 기업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디지털과 인공지능(AI), 4차 산업혁명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재미없는 부모님 기업을 물려받는 대신, 별도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차라리 기업 매각에 따른 현금 상속을 바라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알짜 매물 많아…창업주 설득·기업 변화는 과제
상속을 거부하는 자녀로 인한 매각 선회 현상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시기에 창업했다고 하더라도 대기업은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차세대 인력을 마련해뒀지만,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직원의 성장보다는 오너 개인의 리더십과 능력에 의존해 기업을 유지해온 탓에 자녀가 상속을 거부하면 다음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
올해는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 M&A도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적게는 수십억원대의 중소형 매물 역시 풍부한 유동성과 코로나19 이후 산업 전환을 타고 시장에 등장했다. M&A 시장 문을 두드린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이런 매물들 사이에서도 ‘알짜’로 꼽힌다. 실적 악화를 버티고 버티다 시장으로 나오는 매물과 달리 재무구조도 안정적이고 잠재력도 있다. PEF 운용사 등이 적극적으로 매물 탐색에 나서는 이유다.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소기업 M&A 시장은 다른 기업을 사겠다고 나서는 기업에 비해서 인수될 만한 기업은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며 “그나마 가업승계 이슈가 있거나 창업주가 건강 악화 등으로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경우는 다수가 탐내는 좋은 매물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물론 가업승계 M&A가 처음부터 끝까지 원만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가업승계 M&A 경험이 있는 PEF 운용사 관계자는 “인수하는 입장에선 인수 이후에 새로운 인력을 투입하면서 기존 인력을 교체하고 조직을 탈바꿈시키려고 하는데 그런 신규 직원의 진입에 보수적인 태도를 가진 경우에는 인수 과정에서 설득하기도 까다롭고 딜 이후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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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과 고령화 모두 한국보다 한발 앞서 경험한 일본에선 오래된 현상이기도 하다. 일본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매각 사유로 가업승계를 꼽은 기업은 지난 2017년에도 이미 영업상황 악화나 사업 확장보다 큰 비중을 차지했다. 중소기업 M&A를 전문으로 중개하는 플랫폼이 지난 1990년대부터 생겼을 정도다.
삼일회계법인의 ‘M&A에센스 2020 최신개정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일본의 중소기업 M&A 중개 플랫폼 4곳의 M&A 성사 건수 합계는 1229건으로 3년 전인 2016년(사업연도 기준)의 679건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M&A 수수료 매출 역시 같은 기간에 2946억원에서 5837억원으로 늘었다.
가업승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M&A를 진행하는 중소기업은 앞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추측이다. KMX는 이번 분석에서 “현재는 건수 비중이 크지 않지만 가업승계 문제 해결 등을 위해 기업매도를 희망하는 M&A 형태가 새로운 M&A 패턴으로 잡아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