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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초지종은 이렇다. 작가 김정수(66)가 자신의 그림을 불태워버렸다. 커다란 바구니에 고봉밥처럼 쌓은 진달래꽃 그림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그이가 맞다. 누구나 의아해할 이 ‘그림소각 이벤트’는 바로 NFT 작품을 만들기 위한 수순이었다. 장작불에 산화한 그림은 ‘진달래-축복’(2019). 작품가만 9000만원에 달했더랬다. 그렇게 ‘거사’가 있은 후 얼마 뒤 작품은 이전 원작을 NFT화한 300개 한정판으로 다시 태어났다.
과연 시장에서의 반응은 어떨까. ‘아젤리아’(Azelia#1∼#300·2021)란 타이틀로 지난달 28일부터 글로벌 가상화폐거래소인 FTX의 NFT 플랫폼을 통해 판매되고 있는 작품은 업로드하는 족족 팔려나가는 중이다. 3∼5개씩 순차적으로 올리고 있는데 현재 #1부터 #104까지 ‘솔드아웃’된 상태. 그런데 중요한 건 여기가 끝이 아니란 점이다. 작품을 구매한 이들이 다시 ‘리세일’에 돌입해 작품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거다.
◇김정수 ‘진달래’ NFT 한정판, 100달러 사서 1만 달러 되팔아
1개당 1000달러(약 117만원)를 정가로 판매하는 작품은 에디션 넘버에 따라 10∼100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동일한 플랫폼에서 리세일이 진행되고 있다. 가령 #87은 정가 1000달러에 팔린 지 2시간도 안 돼 2999달러에 다시 팔렸고 현재 5000달러에 또 한 번 리세일을 진행 중이다. #69는 판매 이후 하루 만에 5000달러에 다시 팔린 뒤 6969여달러로 리세일에, #19는 여드레만에 1만달러(약 1170만원)에 다시 팔려 지금은 50만달러의 가격을 달고 플랫폼에 또 나왔다. #18은 여드레만에 3000달러에 팔렸고 현재 1만달러를 부르고 있다. 이미 거래된 것만 놓고 볼 때 3~10배 이상의 가격으로 되팔린 작품이 적잖은 거다.
리세일까진 가지 않았더라도 NFT로 지대한 관심을 이끌어낸 작가는 더 있다. 그중엔 이미 대중에 잘 알려진 작가 하정우와 우국원이 있는데. 하 작가는 지난달 자신의 디지털작품을 NFT화한 ‘더 스토리 마티 팰리스 호텔’(2021)을 4만 7000클레이(약 5700만원)에 낙찰시켰다. 표갤러리와 그라운드X가 카카오 암호화폐지갑 클립의 ‘클립드롭스’에서 진행한 경매에서 작품의 시작가는 2만 7000클레이(약 3200만원). 앞서 같은 플랫폼에서 진행한 작가 우국원의 NFT 작품 ‘본파이어 메디테이션’(2021)은 5만 8550클레이(약 7143만원)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시작가는 3만 5000클레이(약 4269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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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하셨습니까”…유명작가 줄줄이 진입 중
결국 그 방식이 어떻든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다. 끝까지 캔버스에 붓질로 서정적 화면을 만들어낼 줄만 알았던 김 작가, 본래 직업인 배우 외에 화가 뺨치는 화력을 자랑해온 하 작가, ‘블루칩’으로 부상하며 MZ세대를 대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우 작가 등이 NFT란 미지의 시장에 뛰어들어 성공적으로 데뷔한 셈이니까. 사실 간송미술관까지 나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NFT화해 100개 한정본으로 1억원씩 판매하고 있는 상황인 데야.
맞다. 미술시장은 지금 ‘NFT로 좌향좌!’ 중이다. 오죽했으면 요즘 작가들이 만나면 하는 인사가 “NFT 하셨습니까”라지 않나. 그저 퍼포먼스 즐기는 작가들의 전유물쯤으로 여겼던 NFT 작업이 이젠 모든 작가와 갤러리가 ‘준비해야 하는 일’로 옮겨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 뜨거운 관심을 타고 국내 최초의 ‘NFT 아트페어’도 열렸다. ‘넥스트 아트페어’란 타이틀로 13일까지 온라인에서 진행하는 아트페어에는 차지랑·조영각·김효재·수목·레이지비디오·천눈이 등 국내 젊은 아티스트 120팀이 내놓은 1500여개의 NFT 작품을 내걸었다. 90%에 달하는 시각미술작품 중 눈에 띄는 시도는 ‘메타-만다라 미니-33×33그리드’(2021). 작가 전인경의 회화에 작가 이주행이 AI 딥러닝 기술을 얹어 색·문양을 분할했고, 만다라 9개(3×3)씩 들어간 작품 1024개로 나뉘어 5만원씩에 판매했다.
오늘까지 참여한 관람객 수는 1만 8000여명, 하루평균 1200명 정도로, 이들이 거래한 작품 수는 200여점, 3000만원 규모다. 신진작가가 주축이 된 국내 첫 NFT 아트페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성과는 적잖다. ‘NFT 시장’을 본격적으로 여는 신호탄처럼도 읽히기 때문이다. 아트페어를 주최한 송상훈(38) 임팩트스테이션 대표는 “이제 막 NFT 시장이 형성됐을 뿐, 무엇보다 좋은 아티스트를 좀더 알리고 그들에게 다른 시장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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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팔리고 잽싸게 리세일…전통 미술품 거래와 달라
사실 그 말대로다. ‘어?’ 하는 사이에 ‘훅!’ 들어왔다. NFT를 두고 “복사가 당연한 디지털시대에 고유 인식값으로 그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제대로 파악도 못했는데 이미 저만큼 내달린 형국이랄까. 덕분에 마음이 바빠진 것은 컬렉터다. ‘NFT 작품을 지금 살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 섰다고 할까.
역시 주요 수요층은 디지털에 강한 MZ세대. 경직·고정된 전통적 분위기 탈피는 기본, 방식·내용의 다양성은 옵션이다. ‘세상에 유일한 것’도 딱 그들의 취향이다. 한정판·희소성 등으로 미래가치를 가늠하는 과정이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대단히 빠르다’. 김 작가의 ‘진달래-축복’의 NFT화를 진행해온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작품이 팔리고 20여분만에 리세일에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며 “에디션 넘버에 따라 100배 이상의 가격을 붙이기도 했다”고 놀라움을 전했다.
그래서 “오늘의 가격이 가장 유리하다”고 말한 것은 임 대표다. “NFT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데다가 그중 NFT 아트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점”을 내다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의 시선도 적잖다. “가상화폐로 사고파는 만큼 누가 어떻게 샀는지, 거래·자금 경로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거품 논란도 있다. 갑작스러운 붐업으로 턱없이 가격이 올라있다는 거다. 한 미술평론가는 결국 “무제한 발행이란 장점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며 “진입이 용이한 만큼 공급이 수요를 넘어설 때가 올 테고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