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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줄줄이 보고 누락…가해자 조사 미적 댄 공군
네이버 사원 A씨는 지난달 25일 경기 성남 분당구의 자택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생명’은 같은달 28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고인이 생전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위계에 의한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업무상 재해”라며 개선을 촉구했다.
부고 소식이 알려지자 한성숙 네이버대표는 “경영진은 이번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사외이사진에게 의뢰해 외부 기관 등을 통해 객관적인 조사를 받는 과정을 갖겠다”고 밝히는 등 사내 직원들에게 메일을 통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네이버는 자체 조사로 문제를 축소할 가능성을 차단했고 사외이사로 구성된 ‘리스크 관리위원회’에 맡겨 진행하기로 했다. 노조는 회사에 “명확한 진상규명을 위해 고인에 대한 사내 모든 데이터를 보존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공군 여성 부사관 B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B씨는 선임 부사관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했지만 군 부대 상관들은 “없던 일로 해 달라”며 협박 등 회유와 사건 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을 맡은 김정환 변호사는 지난 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피해자가 사건 직후 직접 블랙박스 영상을 입수해 경찰에 제출했다. 군인에 대한 강제추행은 굉장히 엄격하게 처벌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도 군에 5차례 보고했고 정신적 피해가 상당했다. 감경하더라도 법정형이 3년 6개월 이상이다. 더군다나 상관들의 계속된 회유와 협박으로 증거인멸의 우려도 매우 컸는데 구속 영장이 진작에 청구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사건 직후 피해자가 선임에게 전화해 피해를 알렸기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지휘관까지 보고가 됐을 것”이라며 “매뉴얼대로 진행되고 피해자가 보호를 받았다면 이런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네이버뿐만 아니라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신고 조차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위의 사례처럼 회사나 관계기관에 신고를 하더라도 따돌림이나 업무배제·부서이동 등 ‘보복갑질’이라는 또 다른 피해를 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도…‘갑질·역갑질’
지난해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과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 직장 및 업무상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한 노동자는 487명이었다. 같은 해 정신 질병으로 인한 사망 노동자 산재 신청은 95건(19.5%)에 불과했다.
신고한 이들 중에서도 71.4%는 피해 사실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신고 후 근무조건의 악화나 따돌림, 해고 등 불합리한 처우를 겪었다는 이들도 67.9%였다.
일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업무와 재해간 상당한 인과관계)이 인정되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극단적 선택을 한 노동자 10명 중 8명은 산재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자들의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서는 직장내괴롭힘 금지법과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 권두섭 대표(변호사)는 “괴롭힘을 호소하는 분들을 보면 신고하거나 조력해서 절차를 밟을 방법이 없다”며 “노조가 있는 경우는 덜하지만 회사나 노동부 신고는 퇴사나 불이익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괴롭힘을 개인의 일탈로 접근하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업무수행방법,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과 예방 교육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권 대표는 “근로기준법 제76조는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에게 불합리한 처우를 할 경우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노동당국에 신고할 수 있지만 근로감독관들이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기 전까지 불리한 처우는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갑질 근절을 위해서 조사기관의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