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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시의 심장인 하얼빈 역은 공사가 한창이다. 역내 확장은 끝났으나 역전 정비사업이 남았다. 현재의 가림막이 모두 사라지면 마치 공원 같은 기차역이 될 터이다. 하얼빈 역사가 모습을 바꾸는 이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공간이 있다. 109년 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쏘아 저격한 곳. 하얼빈 역 1번 플랫폼이다.
9일 하얼빈 역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았다. 검색대를 지나자마자 안 의사의 거사 당시 모습을 담은 대형 그림이 관람객을 맞는다. 덩치 큰 러시아 군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이토에게 정확하게 세 발을 명중시키는 모습이다. 헤이룽장 성 출신의 유명 중국인 화가가 그렸단다. 그리고 보이는 안 의사의 등신대 동상. 머리 위 시계는 9시30분에 멈춰져 있다. 거사가 일어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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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2014년 1월 이 자리에 개관했다. 역 확장 공사 때문에 2017년 하얼빈시 조선민족예술관으로 이전했다가 지난달 30일에 다시 문을 열고 무료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재개관하면서 면적도 이전의 두 배로 확장했다. 안 의사의 생애부터 거사 직전 11일 동안 머물렀던 행적 그리고 ‘동양평화론’ 등 사상까지 둘러볼 수 있다.
기념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창밖이다. 기념관 가장 안쪽에서 하얼빈 역 1번 플랫폼을 유리창 너머 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가 거사한 장소는 삼각형, 이토 히로부미가 총에 맞았던 곳에 마름모로 표시했다. 성인 기준 예닐곱 걸음 가량 되는 거리. 머리 위에는 안중근 의사의 거사가 있었던 장소임을 알리는 현판이 있다. 거사가 있었던 이 장소는 열차 플랫폼으로 오늘날에도 활용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재개관 이전 약 20여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 있는 장소다. 특히 하얼빈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방명록에는 “잊지 않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뜻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등 기념관을 찾은 이들이 남긴 글이 가득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와 하얼빈 시민이 남긴 글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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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2013년 6월 당시 대통령이던 박근혜가 베이징 한·중 정상회담에서 “하얼빈 역에서 안 의사의 거사 장소를 알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시진핑 주석이 수락하면서 세웠다. 당시 성대한 개관식을 열 정도로 중국 정부와 하얼빈 시가 힘을 쏟았다. 이후 안 의사를 잘 몰랐던 하얼빈 시민도 기념관이 생긴 후 인식이 달라졌다는 전언이다. 하얼빈에서 10년 넘게 산 최창호 씨는 “이전에는 ‘안중근 의사’나 ‘하얼빈 거사’를 모르는 중국인들이 많았으나 요즘에는 다르다”라며 “안 의사를 제대로 알리려는 한국 정부와 중국 내 조선족 사회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다만 하얼빈 역사 공사가 진행 중이라 입구가 가려져 찾아가기 어려운데다 제대로 된 홍보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재개관은 국내에서는 크게 소개됐으나 중국에서는 하얼빈 지역지에 작게 보도됐을 뿐이다. 최근 일본과의 관계 회복을 노리는 중국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재개관을 크게 알리기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소 불친절한 하얼빈 내 ‘안중근 찾기’는 안 의사가 하얼빈 거사를 계획했다고 알려진 자오린공원(구 하얼빈 공원)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가 투옥됐을 당시 유언으로 국권이 회복되기 전 자신을 잠시 묻어 달라 한 장소이기도 하다. 2006년 하얼빈 시가 안 의사의 친필 유묵 중 ‘청초당’과 ‘연지’라는 글씨를 새긴 비석을 세우고 상징과도 같은 왼손 약지가 잘린 손도장을 그려놓았으나 안내문 등이 없어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얼빈 시민이 가장 존경한다는 자오린 장군의 이름을 딴 곳이긴 하나 권총 한 자루로 역사를 바꾼 영웅의 이야기가 적힌 작은 공간이나마 있었으면 어땠을까란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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