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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더위 연두치맛바람? 미술관 앞마당에 무슨일이

오현주 기자I 2017.07.17 00:14:00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7'
올해 선정된 건축가 양수인의 '원심림'
플라스틱 연두그물망으로 원시림 설치
원심력 이용해 퍼지면서 바람까지 내
삼청로길 서울관 앞마당에 쉼터 제공
"가볍고 경제적 건축"…친환경효과도

서울 종로구 삼청로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 들어선 양수인의 ‘원심림’의 야경. 연두색 그물망을 부풀려 그늘과 바람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원시림의 자연적인 시원함을 원심력의 기계적인 원리로 만들어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서늘한 바람이 분다. 단단한 쇠기둥에 매달려 축 늘어져 있던 연두색 그물망이 제자리돌기를 시작한다. 회전에 속도가 붙는가 싶더니 그물망이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거대하게 나풀거리는 연두치맛바람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4분여 돌았을까. 회전속도를 줄이던 연두치마는 이후 완전히 멈춘 뒤 2분여의 휴식에 들어간다.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격렬하게 돌다가 다시 멈추면서 휴식. 총 14개. 각각의 축에 매달린 이들은 저마다의 패턴을 가지고 하나의 리듬감에 맞춰 소리 없는 오케스트라의 조율을 이뤄낸다.

△바람과 그늘을 내주는 연두그물망

서울 종로구 삼청로길. 경복궁 건너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 인공수림이 들어섰다. 한여름 복더위에 시원한 그늘과 함께 신선한 바람을 제공하는 이것은 건축가 양수인이 제작한 ‘원심림’.

‘원심림’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해마다 진행하는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이 선정한 올해의 당선작이다. 건축사무소 삶것을 운영하는 양수인 소장이 간단한 기계장치를 이용해 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원심목으로 미술관 앞마당에 조성해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 들어선 양수인의 ‘원심림’. 연두색 그물망을 부풀려 그늘과 바람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원시림의 자연적인 시원함을 원심력의 기계적인 원리로 만들어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원심림’은 우거진 숲을 의미하는 ‘원시림’과 나무의 생장동력인 ‘원심력’을 합성해서 만든 말. 원리는 이렇다. 마치 모기장같이 얇은 플라스틱 그물망이 높이 3∼5m의 쇠기둥 14개에 매달려 있고, 꼭대기에 장착한 캐노피 전기모터가 동력을 기둥에 보내면 늘어져 있던 연두색 그물망이 펼쳐지는 구조다. 모터가 돌면 원심력이 작동해 매달린 물체는 밖으로 뻗쳐나가려고 하는데 ‘원심림’은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한 작품이다.

이를 위해 양 소장은 50개 이상의 모터를 가져다가 테스트를 진행했단다. 캐노피 모터 속도를 따지고 바람에 따라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폈다. 실험을 하느라 “태워 먹은 모터”도 여러 개다. 기둥을 지탱해주는 건 12인치 바퀴 3개가 달린 평상이다. 움직일 수도, 앉을 수도 있게 했다.

△“스윽 가져다놨다가 스윽 치울 수 있는”

양 소장은 가볍고 경제적인 건축에 대한 고민을 십분 반영했다고 말한다. “‘원심림’은 자연법칙을 따른다. 지구의 원심력을 통해 부풀어 오르고 중력에 의해 닫힌다”고 소개한다. 게다가 친환경적이란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것이 목적”이라며 “땅을 파헤치고 심을 박아넣는 기존의 건축과는 달리 스윽 가져다놓고 스윽 치울 수 있는 설치가 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 들어선 양수인의 ‘원심림’. 연두색 그물망을 부풀려 그늘과 바람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원시림의 자연적인 시원함을 원심력의 기계적인 원리로 만들어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은 1998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이 시작했다. 국내서는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뉴욕현대미술관·현대카드와 파트너십을 맺은 후 공동주최하는 형태로 선보였다. 서울관 앞마당을 ‘쉼터·그늘·물’이란 세 가지 키워드로 꾸미는 콘셉트. 국내 젊은 건축가를 발굴·지원하면서 건축과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사례로 영역을 넓혀 가는 중이다.

매년 전시를 보러 내한한다는 피포 초라 로마국립21세기미술관 건축선임큐레이터는 “미술관과 건축이 공적공간의 일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양 소장의 작품을 두곤 “건축이 열린 분야이자 확장하는 분야이고 영구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준 작품”이라며 기획의도를 높이 샀다.

△시민에게 휴식? 모터에도 휴식을!

‘원심림’은 더운 여름 한시적으로 도심에 세우는 이른바 ‘팝업공원’을 표방한다. 시민에게 신선한 휴식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터에도 휴식을 줘야 한다는 독특한 개념은 양 소장의 철학이기도 하다. “기계적인 생명체가 스스로 한계를 안은 채 생존해가는 방식처럼 보이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서울관 안의 전시실에는 ‘원심림’ 외에 이번 공모에서 후보로 올랐던 나머지 4개의 작품 모형 등을 전시한다. 강현석·김건호·정현(SGHS설계회사)의 ‘파티오’, 김재경(김재경건축사무소)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이승택·임미정(STPMJ)의 ‘삼청로 30-1’, 조진만(조진만건축사사무소)의 ‘유적’ 등이다.

‘원심림’을 두고 누구는 버섯 같다고 하고, 누구는 우산이라고, 또 누구는 해파리라고 한다. 생긴 모양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듯하다. 건축이 자연과 친밀하게 공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고안했다면. 복더위에 일기 시작한 연두치맛바람은 오는 10월 9일까지 펄럭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7’에 최종후보에 오른 이승택·임미정(STPMJ)의 ‘삼청로 30-1’ 모형(사진=오현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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