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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니지먼트]⑧웃음으로 만병통치약을 조제하는 약사

류성 기자I 2014.03.07 06:00:00

"약은 웃음과 섞어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신념의 소유자
'재치와 유머로 배우는 실전 약국경영'의 저자
대전 십자약국 정일영 약사

[대전=이데일리 류성 산업 선임기자 최규상 한국유머전략연구소장] “앞으로 찬 것 드시지 마세요. 아이스크림은 데워 드시고, 음료수는 볶아 드세요.”

찬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 약국을 찾은 환자에게 약사가 해주는 처방전이다. 대전시 중구 산성동에 자리 잡은 십자약국의 정일영 약사. 정 약사는 방문한 환자에게 약을 조제해 주기보다 위트 넘치는 ‘유머’처방을 해주기로 대전시내에서 정평이 나 있다.

정 약사는 지난 27년 동안 “웃음이 어느 약보다 효과가 좋은 최고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신념 하나로 약국을 경영하고 있다. “약사가 웃어야 환자가 웃지요!” 약사가 먼저 웃어야 환자들이 웃게 되고, 환자가 웃으면 더 빨리 치유될 수 있다는 게 정 약사의 지론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하루는 “어떻게 하면 약을 많이 팔까가 아니라, 오늘은 무슨 인사말로 손님들을 미소 짓게 만들까”하는 고민으로 시작한다.

◇유머로 고객을 즐겁게 해주기 시작한 사연

정 약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맹장이 터졌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친구들이 “대통령의 웃음”이라는 책을 병상에서 읽으라고 선물했다고 한다. 그 책을 접하고부터 웃음과 유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후 약대를 졸업하고 자신이 약국을 직접 운영하기에 앞서 선배의 약국에서 실습을 했다. 그때 만난 선배 약사가 운명적으로(?) 유머 고수였다. 그 선배는 고통스러운 표정의 환자라도 웃음으로 이끌며 편안하게 해주는 색다른 비결이 있었다.

무엇보다 환자들과 스스럼없이 하는 대화와 우스갯소리가 일품이었다. 아픈 사람에게 약을 지어주고 웃음까지 덤으로 주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없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고객을 즐겁게 할까를 항상 궁리하면서 약국을 운영하는 게 일상생활이 됐다. 정 약사는 “유머와 위트 한마디에 약국을 찾아온 환자들이 아픈 것을 잊고 즐겁게 웃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유머 서적까지 내게 된 동기

선배 약사로부터 기본적인 약국 경영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독립해 직접 약국을 차리면서 고민거리가 한두 가지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병을 물어보면 어쩌지.” “내가 지은 약 때문에 부작용이 나지는 않을까.”

어떤 때는 약국으로 걸려오는 고객들의 전화를 받기조차 두려울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약국 실습에서 배웠던 유머와 재미있는 대화들을 활용하면서 초보 약사라는 딱지를 뗄 수 있었다.

약국 운영에 자신이 붙은 정 약사는 시간 나는 대로 환자들과 나눈 유머를 꼼꼼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정 약사는 이런 기록들을 정리해 당시 대표적 인터넷 통신 서비스였던 하이텔의 약사 동호회 커뮤니티에 하나하나 연재했다.

그의 감칠맛 나는 약국 스토리에 전국 약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일약 동호회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를 눈여겨 본 한 출판사의 권유로 ‘재치와 유머로 배우는 실전 약국경영’이라는 대한민국 최초의 약국 관련 유머 전문서적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대전광역시 산성동에 있는 십자약국의 정일영 약사는 지난 27년 동안 “웃음이 어느 약보다 효과가 좋은 최고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신념 하나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권욱 기자
◇유머가 좋은 이유

무엇보다 약국을 찾는 환자들에게 유머가 들어간 말로 대했더니 많은 환자들이 좋아했다. 어떤 손님은 약국에 들어오자마자 “오늘은 왜 싱거운 소리 안 해?”라고 웃음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고객은 어떤 유머에도 진지한 표정을 잃지 않기도 한단다. 그럼에도 “약과 함께 웃음을 섞어 먹어야 한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환자들에게 유머를 나누는 약사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웃으면 신체의 면역수치를 강화시켜 약의 효과가 높아지게 돼 병을 빨리 낫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웃을 때는 들어오는 병이 없고, 안 나가는 병도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정 약사만의 유머 비결

그는 자신의 유머 비법은 메모에 있다고 확신했다. 대학 때부터 길을 걷다가도 유머가 떠오르면 곧바로 수첩을 꺼내 들고 적을 정도로 메모광이었다. 메모를 하게 되면 평상시 항상 유머를 생각하게 되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쉽게 응용할 수 있다고 한다.

정 약사는 자신이 유머 고수가 된 데는 남과 다른 세 가지 차별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먼저 고객의 말을 경청하며 유머 소재를 찾는다. 아무리 재미있는 인터넷 유머라 할지라도 실생활에서 상대방과의 대화 속에 들어 있는 유머보다 못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생활 속의 평범한 대화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서 명품 유머로 승화하는 것이다.

언젠가 한 아주머니가 약국 문을 열면서 입을 열었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더니 어깨가 결린대요.” 정 약사의 대답. “주무실 때 발로 걷어찬 것 아니예요, 아프지 않게 살살 차시지 왜 그렇게 세게 차셨어요?”

둘째는 끊임없이 비유를 활용하여 유머를 개발한다. 정 약사를 찾는 손님들은 주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직설법 대신 비유법을 많이 사용한다. 비유를 들면서 설명하면 쉽게 이해시키면서도 웃음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는 것.

얼마 전 약국에 들른 한 환자가 정 약사가 조제한 한 움큼의 약을 건네 받자 “아니 약이 왜 이리 많아요? 이게 다 몇 개야? 이걸 다 먹어요?” 라며 짜증을 부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객의 역정을 웃음으로 바꾸는 정 약사의 재치있는 응답이 이어졌다. “밥 드실 때 밥 알갱이 다 세면서 드세요? 그냥 한 수저에 다 드시잖아요. 걱정하지 말고 드세요.”

빨리 병을 낫게 해달라고 조급해 하는 환자에게는 이렇게 대답한다. “대전에서 서울갈 때 2시간 걸리죠? 약도 그렇습니다. 나을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

셋째는 상황을 약간 과장하면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한다. 약국 문을 연 한 남자 고객이 정 약사에게 처방전을 건넸다. 처방전을 보니 소염진통제, 소화제, 근이완제가 처방되어 있었다. 남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죽을 병은 아니냐”고 그에게 물었다. “네 죽을 병이네요. 앞으로 70년 정도 더 사시다가 죽을 병이네요”. 고객의 근심이 웃음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언젠가 환자가 정 약사에게 물었다. “약사님도 아플 때가 있나요?” “그럼요. 약사도 아플 때가 있지요. 식당주인도 배고플 때가 있잖아요?”

◇모든 고객이 행복해질 때까지 정 약사의 유머는 계속된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생활을 한 곳은 모 제약회사의 품질 관리부다. 제약회사에서 일하면서 고객의 행복보다는 수익을 최우선시하는 회사의 생리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때 앞으로 약국을 하더라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약국을 경영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약국 경영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고 정 약사는 자부했다.

“최근 들어 의약분업으로 고객 수가 줄어들고 매출 또한 신통치 않지만 고객을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약사야 말로 다시 태어나도 하고 싶은 천직이다.” 인터뷰 내내 환한 표정으로 웃음 짓는 정 약사는 분명 마음 만은 세상 최고의 부자였다.

고객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그러면서 자신도 행복해지는 비법을 터득한 유머 고수인 정 약사는 분명 마음만은 세상 최고의 부자였다. 권욱 기자


[최규상 소장의 유머 콕칭]

1. ‘박장대소 약’을 처방하라.

30여 년 전 캘리포니아 의과대학의 노만 커즌스는 웃음의 통증 제거 효과에 주목했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10분간 웃으면 약 2시간 동안 통증이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환자들은 병 자체보다 병으로 인한 통증에 더 큰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런 환자들에게 약사의 한마디는 빛과 같은 역할을 한다. 약을 처방해주면서 ‘15초 박장대소 보약’ 을 권하라.

2. 유머쪽지로 관계를 맺어라.

환자에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약을 처방해주면서 붙임쪽지에 짧게 격려와 관심을 표현해보자. 환자는 약사의 정성어린 쪽지에 매료될 것이다. “고객님 해당화같은 인생되세요.” (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해지는 인생! “인삼은 6년삼이 최고! 그럼 산삼은 언제 먹어야 할까요?” “보자마자!” “웃음은 생각나자마자 먹어야해요. 하루 15초만 웃어도 건강해 집니다. 정일영 약사!”

3. 웃음으로 긍정 마인드를 심어줘라

독일의 마케팅 전문가인 한스 우베퀼러에 의하면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지만 실제로 구매하게 될 때는 감성적인 기분에 좌우돼 구매한다고 한다. 고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웃어주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오셨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등의 멘트로 분위기를 시작하면 고객은 더 즐거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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