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15일자 39면에 게재됐습니다. |
[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각종 경제지표나 뉴욕증시를 보고 있노라면 미국 경제가 살아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미국인들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팍팍하다. 신문이나 TV에서 전하는 내용들을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땅이라는 이 곳에서 다른 사람의 차에서 기름을 빼내가거나 대형마트에서 세제를 훔쳐서 달아난다거나 옆집 전기를 끌어다 쓴다거나 하는 소위 생계형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특히 땅덩이가 넓어 일부 도심을 제외하고는 어딜가나 자동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게 미국의 현실이다보니 휘발유 가격이 지금처럼 뛸 때면 보통 사람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부담은 엄청나다. 작년 여름까지만해도 30달러면 자동차 연료 게이지가 거의 끝까지 올라 갔지만 이젠 큰 바늘 두 개를 겨우 넘긴다.
이렇다 보니 일주일에 두어번 가던 마트에도 한 번만 가게 되고 나들이 횟수도 줄고 장거리 여행도 줄이게 된다. 자동차가 생활의 일부라는 미국인들이나 소비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미국 경제로서는 이보다 중요하고도 절실한 이슈도 많지 않을 듯하다. 자연히 현재 미국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휘발유값 상승이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업률 하락으로 인해 재선이 유력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휘발유값 상승으로 졸지에 궁지로 몰리고 있다. "짧은 시간 내에 유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비책이란 건 없다"고 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고백이 사실일지언정 그런 소극적 태도에 미국 국민 셋 중 두 명은 이제 "오바마의 경제정책을 못믿겠다"며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뒤늦게 국내 원유생산 확대와 원유 수입비중 축소에서부터 시장 투기세력이나 가격 담합행위 단속, 정유사에 대한 지원 폐지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려 하고 있지만, 사실 국민들도 초강대국인 미국 정부라 해도 국제유가를 어찌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다만 자신들의 절실함을 공감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려는 정부의 자세를 기대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뉴스나 블로그 등을 통해서만 듣고 있지만 국내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치솟는 휘발유 가격 문제가 커다란 논쟁을 낳고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미국의 전국 평균 휘발유값은 아직 사상 최고치인 갤런당 4.11달러보다 낮은 3.80달러 수준이라고 하니 휘발유값이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는 국내 사정이 더 급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내놓는 대책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유류세 인하에 부정적이면서도 이것이 마치 `전가의 보도`인양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르면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해온, 또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알뜰 주유소`만 늘리며 폭리를 취하는 정유사보다 주유소만 겨냥하는 정책을 폈던 정부의 정책 말이다.
선거에서 한 표 더 얻기 위해서라도 좋으니 미국같은 절실함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총력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미국의 휘발유값 논쟁을 보면서 느끼는 소박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