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원은 강력한 무기다. 각국은 경쟁적으로 자원외교에 열을 올리고 있고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총성 없는 경제전쟁은 외환시장 뿐만 아니라 이제 원자재 시장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금 뿐 아니라 은 등 귀금속, 비철금속, 원유, 곡물 등 원자재들의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예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가격대까지 치솟았다. 전 세계가 동시에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의 절반 이상은 바로 이 원자재 가격의 상승에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융위기 또 하나의 산물..`원자재값 급등`
`금값 온스당 1500달러 돌파해 사상 최고 기록` `주석값 사상 최고..톤당 3만3000달러 상회` `알루미늄 20개월 최고` `커피 원두값 34년 최고`
원자재별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원유의 경우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정정불안이 결정적으로 작용했고 금과 은값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심리와 산업용 수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원당이나 옥수수, 밀, 콩과 같은 곡물류는 이상기온과 수확량 감소에 따른 타격이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모든 원자재값 급등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것은 바로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의 증가다. 금융위기로 위축됐던 각국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원자재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중국 등 고도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신흥국들은 이들 원자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임경묵 경제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 1970년대 석유파동은 석유 수출국이 공급을 제한하면서 유가가 급등해 생긴 것이지만 이번 원자재 가격 상승은 신흥국가들이 시장경제에 본격 편입되면서 원자재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곡물가격 급등도 신흥국의 소득증가에 따른 육류소비 증가, 바이오 연료 수요 증가에 따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원자재값 상승이 눈에 뻔히 보이자 헤지펀드 등 투기자금까지 몰려 가격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이같은 투기세력은 원자재값의 변동성마저 키우고 있다. 급등하던 원자재값이 5월들어 급락세로 돌아선 것도 원자재값 전망에 베팅했다 차익실현에 나선 투기세력의 영향이 크다. 특히 은값의 경우 투기를 막기 위해 선물 증거금을 인상한 것이 급락의 촉매가 됐다.
향후 원자재값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논란의 초점은 현재의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신흥국들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이어지려면 에너지와 원자재 수요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중국의 석유 해외 의존도가 2008년까지만해도 51%였지만 2030년엔 74%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가스의 해외 의존도는 2007년 5%에 불과했지만 2030년엔 48%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원부국이 차기 주도권 쥔다
이렇게 에너지나 금속,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전세계적으로 수급 불균형이 심해지자 글로벌 경제성장을 저해할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4월1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도 원자재 수급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주요 이슈로 논의됐다. 당시 회의에서 이들 G20국가들은 원유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식량의 생산성을 제고하는 한편 원자재 파생시장에 대한 규제 논의를 구체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해소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결국 패권을 잡을 수 밖에 없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태다. 각국이 앞다퉈 `자원외교` `자원안보`에 나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원자재의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재편되는 글로벌 경제질서에서 밀릴 뿐 아니라 국가 내부적으로도 불안요인이 될 수 밖에 없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식량과 연료가격 때문에 신흥국가에서는 정권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올들어 확산된 MENA 지역의 시위도 결국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고물가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진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집트 등 일부 국가에선 통치자까지 몰아내는 ''혁명''으로 확산된 것이다. .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이제는 농산물 값이 저렴했던 시대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장기적으로는 식량안보의 확보가 핵심과제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희토류 무기 삼은 중국
이에 따라 각국은 자원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원외교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엄청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자원부국에 대한 공략에 나서고 있다.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지역은 `자원의 보고` 아프리카 대륙이다. 중국 외교부장이 아프리카 순방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것은 지난 1991년부터 21년째 이어온 전통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방문을 통해 무상원조와 차관제공, 인프라 구축 등의 선심을 베푸는 대신 광산개발권을 확보하고 유전개발 계약을 성사시키는 등 자원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중국은 비단 아프리카 뿐 아니라 중남미, 중앙아시아, 중동 국가들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자원이 있는 나라들에 대해선 정치색이든 종교색이든 따지지 않고 어디든 달려나갈 준비가 돼 있는 셈이다.
사실 중국은 광물이나 원유 등 원자재 부국이다. 그럼에도 경제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자원외교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것은 자원외교의 치열함을 웅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은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에 대한 무기화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희토류다. 희토류는 전기자동차나 액정표시장치, 풍력발전모터 등 첨단 산업제품에 필요한 원료로 `첨단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하지만 공급원은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 전세계 희토류 생산의 97%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희토류를 값싸게 생산, 공급하면서 미국이나 호주 등 선진국가의 희토류 산업을 괴멸시키더니, 독점구조가 정착된 이후엔 공급조절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중국이 희토류에 대한 수출물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하자 전세계가 바짝 긴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해 9월 일본과 센카쿠 열도에서 외교적 마찰이 발생했을때 중국이 쓴 카드도 바로 희토류에 대한 수출 중단이었고 일본은 결국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의 행보에 미국, 유럽 , 일본 등 선진국들도 이에 뒤질세라 자원확보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이제 자원이 국부를 결정하는 시대에 돌입한 셈이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자원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는 한정된 에너지와 광물자원을 둘러싸고 강대국간 자원 확보 경쟁이 본격화할 것임을 시사한다"며 "자원외교에 더욱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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