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툴젠의 주가는 이날 4만1500원으로 상승 마감했다. 직전 영업일인 지난 3일 주가 대비 10.67% 올랐다.
한동안 우하향하던 주가가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일부터다. 이날 툴젠 주가는 전일 종가 대비 30% 올라 상한가를 기록하고 4만1600원에 마감했다. 330억원 규모 CB 발행 공시 이튿날이었다.
코넥스 시장에서 한때 시가총액 1조원을 기록하던 ‘1위 대장주’ 툴젠은 코스닥 상장 당시 공모가 7만원에서 시작해 한때 10만9000원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지난해 10월부터는 한 번도 공모가를 상회하지 못하고 고전해 왔다. 지난달 24일에는 장중 한 때 2만6100원을 찍으며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꾸준히 우하향하던 주가가 CB 발행 공시 직후부터 반등하기 시작한 것은 CB 발행이 호재로 작용했다는 반증이다.
◇CB 발행조건 투자자에 불리해도 자금조달 성공
무엇보다 투자경색 국면에서 무리없이 자금조달에 성공한 것이 주식시장에서 청신호로 해석됐다. 특히 이번 툴젠의 CB 발행 조건은 비슷한 기간 CB 발행을 공시한 다른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공시 내용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투자자에게는 불리하고 회사에 유리한 것이었다.
예컨대 투자은행(IB) 업계에서 리픽싱 하한을 70%로 설정하는 것은 통상적 관례다.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증발공규정)’에 따라 리픽싱 하한을 70% 미만으로 설정할 수 없는데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이어야 자금조달이 쉽기 때문에 보통 CB 발행 기업들은 리픽싱 요건을 70%로 설정한다. 특히 자본시장이 경색돼 투자자가 ‘슈퍼갑(甲)’이 된 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앞서 CB 발행한 티움바이오(321550), 이수앱지스(086890), 일동제약(249420)의 리픽싱 하한도 7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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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일동제약은 애초 100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하려 했지만 결국 300억원으로 CB 규모를 대폭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CB 발행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제약·바이오 기업에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늘어나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는 전언이다. 일동제약의 경우 만기이자율도 3%에 달한다.
반면 툴젠은 리픽싱 요건을 85%로 설정하고 표면이자율 0%, 만기이자율 1%라는 조건을 걸었음에도 330억원 모집에 성공했다. 툴젠 관계자는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런 조건으로 CB를 발행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판단했다”며 “지난해 말 저촉심사 모션페이즈 단계에서 미국 UC버클리(이하 CVC)와 미국 브로드연구소(이하 브로드)를 상대로 승리했고 다음 단계에 대한 준비도 잘 돼 가고 있는 부분들, ‘엑사셀’ 품목허가 임박 등의 이슈를 기관투자자들이 종합적으로 좋게 평가해 자금조달에 선방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1호 유전자가위 치료제’ 기대감…‘타이밍’이 다 했다
CB 발행 성공은 ‘타이밍’의 영향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지난달 말부터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유전자가위 관련 주식들은 연일 상승세를 탔다. 에디타스메디신(EDIT)과 크리스퍼테라퓨틱스(CRSP), 빔 테라퓨틱스(BEAM)는 지난달 27일부터 상승 조짐을 보이다 6일간 각각 32.7%, 31.6%, 31.5%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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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CRSP와 미국 버텍스파마슈티컬스가 공동 개발한 크리스퍼-카스9 기반 유전성 빈혈치료제 ‘엑사셀’이 연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첫 유전자가위 치료제가 될 거라는 기대감이 유전자가위 관련 주의 주가 상승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FDA는 지난달 31일 엑사셀 시판 허가를 앞두고 자문위원회 회의를 개최했는데, 자문위는 엑사셀로 인해 환자들이 받을 이익에 비해 위험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자문위의 권고가 FDA 최종 결정에서 대개 뒤집히지 않는다는 점에 비춰볼 때 엑사셀의 상용화는 기정사실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엑사셀과 툴젠은 유전자가위 치료제 테마주 이상의 연관이 있다. CVC는 앞서 CRSP 등에 크리스퍼-카스9 기술을 이전해 계약금으로 약 1조5000억원을 수령했는데, CVC는 크리스퍼-카스9의 선발명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특허소송으로 툴젠, 브로드와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CRSP는 소송으로 인한 손해배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엑사셀에 대한 약가 협상이 이뤄지기 전 서둘러 CVC에 툴젠과의 협상을 종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툴젠은 당장 자금조달이 급한 상황이 아님에도 엑사셀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다다른 이 시점에 CB 발행을 단행했다. 툴젠은 연간 200억원 안팎의 금액을 연구개발 및 소송비용으로 사용하는데, 지난 상반기 기준 보유 중인 유동자산은 총 450억원으로 아직 금고가 넉넉한 상태다. 최근 자금조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다른 바이오벤처들처럼 상환해야할 CB가 있는 것도 아니다.
330억원은 2024년부터 3년 간의 운영자금이다. 시장분위기가 좋을 때 자금조달을 받아두고, 안정적으로 내후년 임상 진입을 앞둔 샤르코 마리 투스병(CMT) 치료제 ‘TGT-001’의 연구개발에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툴젠 관계자는 “회사는 CVC나 브로드뿐만 아니라 여기서 기술이전을 받아간 신약개발 회사들과 함께 다자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내년 말 TGT-001의 임상 1상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번 CB 발행을 통해 저촉심사 및 TGT-001의 임상비용을 사전에 확보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연구개발 및 소송 진행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