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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름의 회사도 만든 박순자는 오대양을 민속공예품 제조사로 위장했다. 회사 오대양은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협력업체로 지정돼 사업을 확장했다. 오대양은 민속공예품 사업과 함께 고아원, 양로원 등을 운영했는데, 이는 모두 사이비 종교단체의 외피를 가리기 위함이었다. 고아원과 양로원에 있는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모두 직원들의 가족이었다.
세뇌된 신도들은 자녀가 부모를 구타했고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도들은 ‘하나님의 은총’, ‘은혜로운 죽음’이라는 박순자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성공한 사업가와 복지 단체 대표라는 가면을 쓴 박순자는 이처럼 외부의 별다른 의심을 피한 채 2년간 오대양을 운영했다.
더 큰 비극은 1986년 4월 사업 확장을 꾀하던 박순자가 사기를 당해 사업상 큰 손실을 보며 찾아왔다. 박순자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사채를 빌리는 동시에, 신도들에게 사채를 끌어오도록 지시했고 이렇게 170억원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1987년 8월 16일 박순자에게 수억원을 빌려준 한 사업가가 채무 상환 독촉을 위해 오대양 공장을 찾았다가 신도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를 당한 사업가는 박순자 등을 고소했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해 오대양 직원 13명을 구속했다. 이후 “박순자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채권자들의 신고가 계속됐다. 경찰은 박순자의 사기 사건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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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같은 달 28일 채권자들의 신고를 받고 오대양 용인 공장을 수색했지만 사라진 박순자와 신도들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 박순자가 병원에서 빠져나온 당일부터 경찰이 올 것에 대비해 자신의 세 자녀와 신자들 등 총 31명과 함께 식당 천장에 숨어 지낸 것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박순자 등의 시신은 8월 29일 천장 일부가 내려앉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 오대양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집단자살’로 잠정 결론 냈지만 도주한 오대양 직원들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건의 실체는 약 4년 후인 1991년 7월 수배 중이던 오대양 직원 6명이 자수하며 드러났다. 재수사에 나선 검경은 사이비교주 박순자를 위시한 ‘오대양 집단자살’의 실체를 밝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