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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얼음 장사 [물에 관한 알쓸신잡]

이명철 기자I 2022.04.30 00:30:30

얼음이 매점매석 품목이 된 이유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남산 아래 묵적골에 책 읽기만 즐기는 가난한 선비가 있었습니다. 쌀독에 쌀이 떨어져도, 겨울에 땔감이 없어도 살림 걱정은 아랑곳없이 하루 종일 책만 읽습니다.

당연히 집안 살림은 말이 아니었겠지요. 아내가 품을 팔거나 삯바느질을 해서 근근이 끼니를 연명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참다못한 아내가 과거도 보지 않으면서 책은 왜 읽느냐며 농사도 못 짓고 장사도 못하면 도둑질이라도 해야 굶어 죽지 않겠느냐고 심하게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가난한 선비는 우리가 알고 있는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입니다. 아내의 구박에 허생은 책 읽기를 접고 한양의 변 부자를 찾아가 1만냥이라는 거금을 빌립니다. 그리고는 안성으로 내려가 그 돈으로 시장에 있는 과일을 몽땅 사들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에는 과일 품귀현상이 빚어졌고 허생은 10배가 넘는 가격으로 되팔아 막대한 폭리를 취합니다. 큰돈을 번 허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허어, 겨우 만 냥으로 이 나라를 기울게 할 수 있다니 국가의 심천(深淺)을 알만하구나!”

허생전이 돈벌이에 관심을 뒀다기보다는 매점매석을 경계하고 풍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허생이 사재기를 한 물품도 서민의 생필품과는 거리가 있는 제사상에 필요한 과일과 갓의 재료인 말총이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열악한 유통구조와 나라의 허술한 관리로 돈푼 꽤나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매점매석에 뛰어들어 재미를 보고 있었습니다. 매점매석 대상이 된 물품도 과일을 비롯해 특산물, 곡물류 등 돈이 된다 싶은 물건은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중에는 흥미로운 품목도 있었는데 바로 얼음입니다.

어떻게 얼음이 매점매석 품목이 되었을까요? 조선 후기에 상공업이 발달하고 화폐 유통이 늘어나면서 어류와 육류의 냉장 보관을 위한 얼음 수요가 늘어납니다. 얼음 찾는 곳이 늘어나자 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빙고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얼음 공급을 위한 빙계(氷契)라는 조직도 등장하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얼음공급협동조합쯤 되겠지요. 이들은 정부가 필요로 하는 얼음을 무상으로 공급해 주는 조건으로 한강 얼음을 채취하는 독점권을 따냅니다.

한양의 얼음 공급을 독점한 이들의 농간으로 얼음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합니다. 얼음장사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지체 높은 양반들도 이 사업에 뛰어듭니다. 2012년에 개봉했던 우리나라 코믹 사극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바로 얼음장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조선 후기에 얼음 독점권을 가지고 비리를 저지르는 좌의정 조명수를 상대로 몇몇 꾼들이 서빙고에 있는 얼음을 털어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는 줄거리입니다.

대부분 뭔가를 훔치는 영화에서 도둑들이 노리는 것은 거액의 돈이나, 값비싼 보석이 대부분인데 이 영화에서는 얼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어 소재가 그야말로 ‘쿨’합니다. 영화가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소재 자체는 신선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겨울에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이용하는 방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천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인류의 지혜입니다. 이렇게 저장한 얼음은 여름에 큰 가치를 발휘했고 때로는 큰돈이 되기도 했습니다.

더울 때 얼음이 가치가 있다면 추운 지방에서 얼음을 채취해 더운 지방에 가져가 팔면 장사가 되지 않을까요? 이런 돈키호테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1800년대초 미국에 나타났습니다.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모습. (이미지=국가기록원)
프레데릭 튜더(Frederic Tudor)는 23살의 젊은 나이에 보스턴의 한 호수에서 80t 가량의 얼음을 채취해 배에 싣고 카리브해의 열대지방 섬으로 이동합니다.

호기롭게 시작한 첫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납니다. 현지에 얼음을 보관할 창고가 없었던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얼음을 처음 본 열대지방 현지인들의 무관심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난생처음 얼음을 보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정도로 여겼겠지요.

튜더가 실망하고 사업을 접었으면 세상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현지에 얼음 보관창고를 짓고 현지인들에게 얼음의 쓰임새를 알려줍니다.

그의 영업 수완 덕분에 열대지방에서의 얼음 수요는 점점 늘어납니다. 얼음을 싣고 갔다가 돌아올 때는 열대과일을 냉장 보관하여 뉴욕으로 실어 나름으로써 얼음 장사를 통한 수익은 점점 커집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얼음 보급이 확대되면서 얼음을 직접 소비하는 수요 외에 채소와 생선을 장기간 냉장 보관하기 위한 냉매로서의 수요도 점점 늘어납니다. 튜더의 얼음 장사는 전 세계로 시장을 넓혀갔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경쟁자들도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유럽에서는 노르웨이가 얼음 장사에 뛰어들어 매년 수백만t의 얼음을 영국과 독일에 수출합니다. 이렇게 성장을 거듭하던 얼음장사는 19세기 후반을 정점으로 꺾이기 시작합니다. 얼음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계절에 상관없이 얼음을 만들 수 있는 냉장고가 발명되었기 때문이죠.

냉장고가 보급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공장 얼음이 자연 얼음에 비해 비쌌기 때문에 자연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일은 한동안 계속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1950년대 후반까지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곤 했습니다.

겨울에 얼음을 채취해 여름에 파는 얼음 장사는 한때 대박 사업 아이템이었지만 냉장고에 밀려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요즘 겨울 날씨를 보면 냉장고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장사는 사라졌을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로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한강이 얼지 않는 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운 여름철 우리에게 시원함을 제공해 주는 냉장고와 에어컨 때문에 지구가 더 더워진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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