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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내 엘리트 판사로 통했던 이들의 무죄를 향한 32개월 간의 지난했던 여정을 되돌아봤다. 이들 엘리트 판사 3인방도 다른 사법농단 의혹 연루 전현직 법관들처럼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인한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하진 못했다. 이들은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영장전담 부장판사 시절인 2016년 4~6월 전·현직 판사가 연루됐던 정운호 게이트가 터지자 법원행정처 지시를 받고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영장청구서 내 수사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2019년 3월 재판에 넘겨졌다.
◇檢 “영장서 정보 유출”→法 “상당수는 檢이 제공한 정보”
하지만 1~2심 법원은 법원행정처에 보고된 수사 정보 중 일부가 법원행정처 관계자나 신 부장판사가 검찰 수사팀을 통해 직접 전달 받았고, 신 부장판사의 보고도 통상적인 사법 행정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했다. 또 조·성 부장판사가 신 부장판사에게 일부 영장청구서 내용을 보고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비위 법관에 대한 빠른 징계 조치와 검찰이나 언론 대응을 위한 통상적인 절차였다고 결론 냈다. 수사 방해 목적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도 25일 1·2심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덧씌워졌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벗겨줬다.
이들은 법원 내에서 소위 ‘엘리트 법관’으로 통하던 인물들이다. 신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에서 세 차례 근무하고 사법연수원 교수를 역임한 후 2012년 9월 법관의 꽃이라 불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보임했다. 그는 2016년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자리를 옮겨 국정농단 사태 당시 사법 행정을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2월 나란히 서울중앙지법에 보임한 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는 국정농단 수사 초기 단계였던 2017년 2월까지 영장 재판을 담당했다. 이들은 이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 부장판사는 형사합의21부를 이끌며 △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 지원 의혹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청탁금지법 △최경환 전 의원 뇌물 사건 등을, 성 부장판사는 형사합의32부 재판장으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국고손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댓글조작 사건 등을 심리했다.
하지만 이들은 2019년 3월 검찰 기소 이후 한동안 치욕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직전까지 자신이 근무했던 법원에서 법대가 아닌 피고인석에 앉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야 했고, 재판에 출석할 때마다 ‘사법농단 동조 혐의’를 받는 판사라는 오명으로 언론의 플래시 세례를 견뎌야 했다.
◇최고 엘리트 판사들마저…檢 칼질 ‘희생양’
무엇보다 이들 모두 평생의 업으로 여겨온 재판에서 배제됐다. 특히 신 부장판사는 기소 당시 근무 중이던 서울고법이 재판을 받게 되는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 위치했다는 이유 등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사법연수원에서 사법 연구 업무를 해야 했다. 그는 현재 사법정책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며 여전히 재판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기소 직전 법관 정기 인사를 통해 서울중앙지법을 떠났던 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도 새 법원으로 자리를 옮긴 지 2주 만에 업무에서 배제돼 1년여 간 소속 법원에서 사법 연구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서울북부지법 사법 행정 2인자인 수석부장판사로 발령 받았던 조 부장판사는 업무 배제와 함께 수석부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들은 지난해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에야 재판 업무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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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부장판사는 “재판의 신뢰를 유지하고 사법 신뢰 실추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대책을 검토한 것으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사법행정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이 이 같은 사법행정 활동에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 혐의를 들이댄다면 과연 누가 필요한 사법행정 업무를 수행할 것인지, 사법의 신뢰는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동료 법관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드러냈다. 신 부장판사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온 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가 재판을 받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며 “이 사건으로 많은 전·현직 법관들이 검찰 조사를 받고 법정에 증언까지 하게 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밝혔다.
◇“檢 논리면 재판 이유로 판사들 범죄 추궁당할 수도”
조 부장판사도 “얼마 전까지 이 법원에서 형사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던 탓인지 지금도 피고인석에 있는 제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며 “공소장에서 저는 부당한 목적을 위해 법관으로서의 양심, 책무까지 저버리는 부도덕한 사람이 돼 있었다. 법관으로서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느낌이다. 이게 과연 적절한 검찰권 행사인지 심각한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치 영장전담판사들이 악행에 조력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법관으로서 감내하기 어렵다”며 “그때로 다시 돌아가 영장 업무를 했더라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고, 제가 아닌 다른 판사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소신을 분명히 했다.
성 부장판사도 “검찰이 기소했다고 발표했고, 그 이후 검찰 발표를 토대로 제가 부정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며 “법관으로서 지난 20여 년 간 근무하면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당혹스럽고 참담한 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검찰의 논리가 법관과 재판을 이토록 왜곡해 공격할 수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하기 어렵다”며 “검사가 이런 논리로 법관을 함부로 기소한다면 법관은 자신이 한 재판에 대해 나중에 범죄 행위로 추궁당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재판 업무에 임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사법농단 관련 의혹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은 총 14명이다.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 앞서 지난달 유해용 전 부장판사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아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은 2심까지 무죄를 선고받아 대법원 판결만 남겨둔 상황이다.
나머지 8명 중 하급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전·현직 법관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