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1월 2일자 6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이학선 김도년 송이라 기자] 금융권이 연간 6000억원 규모의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나 적지 않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각종 지원활동이 일회성 선심성 행사에 그치다보니 전시성 행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에서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김모(52)씨. 그는 외환위기때 퇴직한 뒤 퇴직금과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호프집을 열었으나 결국 문을 닫았다. 금융회사에 갚아야할 원리금은 5100만원. 다행히 김 씨는 은행 기부금이나 분담금 등으로 운영되는 신용회복위원회의 도움으로 원리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 김씨는 “자칫하면 채무불이행자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을 뻔 했다”며 “ 지금도 그때일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른다”고 말했다.
김 씨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신복위에 따르면 개인워크아웃이나 프리워크아웃 등 개인신용회복 상담건수는 하루평균 1770명. 그런 상황에서 김씨는 제도적 지원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김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아직 따뜻한 금융의 우산속에 들어 있지 않다. 생활비를 대기 위해 카드빚을 쓰다가 신용불량자로 떨어지거나 학자금 마련을 못해 대부업체에 손을 벌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 소리만 요란한 사회공헌
본질적인 이유는 금융권의 서민지원활동이 본업과 연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4대 금융지주사의 순이익이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금융권은 사회공헌액 몇천억원을 늘렸다고 생색을 내고있다”며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부분부터 생각해야한다”고 말했다.
본업에선 서민들을 홀대하고 부업으로 요란스럽게 도움을 준다고 떠드는 식으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주목되는 금융회사는 신한금융지주다. 신한은행은 최근 연 6%의 이자를 주는 서민형 적금을 내놓았다. 다른 은행에 비해 이자가 2%포인트 가량 높은 파격적인 상품이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상품을 판매할 때도 고객에게 맞는 상품인지, 고객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데서 `따뜻한 금융`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 등떠밀린 대책은 `그만`
금융권이 돈은 돈대로 쓰면서도 서민지원이나 사회공헌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는 또다른 배경에는 이른바 `뒷북대응`이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은행들의 자동화기기 수수료와 카드사들의 결제수수료 인하방식이다. 반(反)월가 시위로 금융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자 등떠밀리는 식으로 수수료 인하에 나서면서 비난만 자초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수료를) 낮춰야한다는 내부의견은 있었지만 다른 은행들이 가만히 있는데 먼저 총대를 멜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적지 않아 타이밍을 놓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사회적 요구사항을 금융권이 선제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자리 창출이다. 금융권 자체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일자리를 주선하거나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금융지원을 벌이는 방식으로 고용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KB금융지주나 신한금융, 기업은행 등이 구직자와 중소기업을 연계한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에는 지금까지 25만명 가량의 구직자가 몰렸다. 고졸 신입사원 채용도 일자리 창출과 함께 학력파괴라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 금융권 색깔찾기 나서야
올해 금융권은 은행권 1조원을 비롯해 총 1조3000억원을 사회공헌비로 지출할 예정이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이젠 질이다.
공익비즈니스 컨설팅기업인 마크스폰의 한정원 대표는 “지원액을 몇배 늘리는 식으로는 현재 금융권에 요구되는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키긴 어렵다”며 “단순한 기부나 자선이 아닌 금융기관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새로운 사회공헌 아이템을 찾는 차별화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권만의 색깔있는 지원을 위해 제도적인 개선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느날은 대학기숙사 신축에 지원하라고 하고 어느날은 학자금 대출을 추진하라고 하는데 정부시책에 따라 사회공헌활동의 성격이 바뀐다”며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선 지금처럼 외풍에 흔들리는 풍토부터 바뀌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