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이모씨(36)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 형·동생으로 지내던 김모 부장(39)이었다.
"잘 사냐? 나야, 김 부장"
"와, 형, 어쩐 일이세요? 중국 생활은 재미있어요?"
"그게 말이야. 할 말이 좀 있는데.."
김 부장은 이씨와 함께 SMD에서 근무하다 중국 LCD(액정표시장치) 업체인 B사로 옮긴 인물. 이들은 평소에도 개발과 관련된 얘기를 많이 나눴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사실은 우리 회사에서 이번에 옥사이드 TFT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말이야, 네가 좀 도와주면 좋겠어. 너희 회사 자료만 좀 보내주면 내가 널 우리 회사로 불러 줄수 있을 거 같은데.."
옥사이드 TFT 기술은 디스플레이 화소를 구동하는 내부 구동회로를 현재의 아몰퍼스 실리콘 대신 옥사이드 반도체로 형성하는 기술로, 아직 삼성과 LG도 상용화하지 못한 첨단 기술이다.
LCD 생산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는 데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AM 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를 별도의 라인 증설 없이 기존 LCD 라인에서 생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SMD는 지난 4년간 40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해 기술을 개발해 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연구실에서 옥사이드 TFT 비밀자료를 출력해 이를 클린용지에 옮겨 적은 후 주머니에 넣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방법으로 자료를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집으로 돌아온 이씨는 적어온 비밀자료를 개인 PC에서 문서작성을 한 다음,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고자 배우자 명의 이메일을 사용해 중국 B사 김 부장에게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B사는 회사 내부에서 한국의 기술 동향을 파악을 별도의 팀을 운영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회사가 한국의 기술을 빼오는 '산업스파이'를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던 셈이다. 제2, 제3의 기술 유출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B사에서 삼성, LG 등 한국의 기술을 빼오기 위해 이를 관리하는 전담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B사의 조직적인 기술 빼가기 시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B사는 친분이 있는 한국 기업의 연구원들을 우선 파악한 뒤, 개별적으로 접근해 "해고되면 책임질테니 걱정말라"는 식으로 회유하는 수법을 주로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LG디스플레이(034220) AM OLED 기술 개발 연구원인 김모씨(37)도 그런 경우다. 친분이 있던 중국 B사의 김모 부장은 A씨에게 은밀하게 접근해 "중국에 오면 주말에 골프도 칠 수 있을 만큼 근무여건이 좋다"면서 회사의 AM OLED 사업계획서를 빼돌려달라고 은밀히 요구했다.
김 부장의 말에 넘어간 김씨는 자신이 근무하는 연구실에서 '5.5세대 AM OLED 사업계획서' 파일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사진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넘겼다.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이뤄졌지만, 국가정보원의 산업기밀보호센터에 첩보가 입수됐고, 경기지방경찰청 산업기술유출수사대가 1년 간의 내사를 통해 결국 덜미가 잡혔다. 핵심 디스플레이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SMD 이씨 등 3명은 지난 2일 구속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디스플레이의 경우 한국 업체들의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중국 업체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 같다"면서 "기업들이 중국 기술 유출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