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현대적이고 세련된 양식의 로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상했던 대로 철저한 보안 검색을 거쳐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육중한 문을 지나자 복도를 따라 금방이라도 사진에서 튀어나와 질주할 것만 같은 매끈한 자동차 스케치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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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 인사를 건네자마자 `시보레 볼트`에 대한 열띈 이야기가 시작됐다.
`볼트`는 GM이 오는 2010년 11월 출시를 목표로 개발중인 전기충전 자동차.
릭 왜고너 GM 회장이 매일 보고를 받으며 수시로 챙길 정도로 GM이 사활을 건 프로젝트다. 이 야심찬 프로젝트의 디자인 총괄이 바로 그다.
"현재 볼트에만 매진하고 있습니다. 볼트는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아이콘적인 자동차입니다. 놀라운 전환점이 될 겁니다. GM을 살릴 수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성공한다면 모든 관련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겁니다"
역사를 새로 쓸 자동차라. `볼트`는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다. 주차장에서 콘센트를 꼽아 6시간 전기를 충전하면 40마일을 갈 수 있다. 하루 40마일만 운행한다면 평생 주유소 갈 일이 없게 된다.
유가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배럴당 140달러를 향해 바짝 다가서고, 지구가 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 시점에서 더욱 절실한 `드림카`다.
"올해 1월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GM이 만든 차량 중 가장 많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죠. 2010년 11월 출시를 목표로 상품화를 추진중입니다. 40마일은 무난히 맞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내구성이죠. 현재 내구성 테스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SF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자동차. 그렇다면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 현재 GM이 생각하고 있는 가격은 3만~4만달러. 환경 부담금을 감안한 세금 혜택 7000달러를 빼면 3만달러대 초반 정도다. 현재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도 세금 혜택을 받고 있어 `볼트`도 그런 혜택을 받는데 무리가 없을 전망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김 매니저는 "볼트는 대중을 위한 중소차입니다. 수익성을 생각했다면 캐딜락에서 개발했을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하이브리드카와는 어떻게 다를까. 하이브리드카는 메인 심장이 여전히 엔진이지만 전기차인 `볼트`는 메인 심장이 배터리. 따라서 최고 성능의 배터리 개발은 이 프로젝트의 관건이다. 현재 `볼트` 배터리 개발에는 우리 기업인 LG화학(051910)이 참여하기 위해 준비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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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시퀄`을 개발하기도 했던 김 매니저는 환경 운동가가 다 됐다. 잇달아 환경차를 디자인하다보니 자연스레 환경에 관심이 많아진 것.
"한국도 환경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지금 중국은 정부가 나서서 환경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우리보다 먼저 눈을 뜨고 있거든요. 특히 대중교통은 먼저 환경차로 가야 합니다. 연구 개발 등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에 밀려 고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세계 1위 자동차업체인 GM의 디자인 매니저가 되기까지의 길이 쉽지는 않았을 터.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행로를 물었다.
"회사(기아차) 부도와 외환위기, 그리고 현대차와 합병..여기까지는 충격이 아니었지만 함께 일했던 선후배들이 하나, 둘씩 떠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미래가 보장된 듯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혼자 남게 된 거죠. 그때 유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와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팔에 마비가 올 정도였죠. 물론 밤새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불살라 보는 거였죠"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미시간 CCS(College for Creative Studies) 대학 유학 4개월만에 GM 고위 인사가 작품을 보고 입사 제의를 건넨 것이다. 2001년 GM 캐딜락 디자인스튜디오에 입사한 그는 승승장구했다.
입사 2년만에 아시아인 최초로 GM 디자인 매니저가 됐고, 2005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시퀄` 디자인 팀장, 2007년 전기 자동차 `볼트` 디자인 총괄을 맡았다. 특히 `볼트`는 최우수 디자인상과 컨셉트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는 수상 순간보다는 지난해 4월 고국에서 열린 서울 모터쇼에서 스피치 했던 순간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12살난 아들이 `볼트`가 출시되면 꼭 사겠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 벅차했을 때에도 디자이너로서의 삶에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같은 꿈을 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예전에는 좋은 자질을 갖고도 정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죠. 지금은 정보는 많아졌지만 그만큼 경쟁이 심해졌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기술력도 좋아졌으니까요. 그러나 한국에서 일하는 것만이 한국을 위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큰 꿈을 갖고 부딪히세요. 안정된 길을 추구하기 보다는 부딪히는 삶을 사세요"
◇김영선 GM 디자인 매니저 약력
1982년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입학
1986년 기아자동차 디자이너 입사
1990년 `스포티지` 디자인
1993년 `슈마` 디자인
1999년 `쏘렌토` 디자인 팀장
2000년 미국 미시간 CCS(College for Creative Studies)대학 유학
2001년 캐딜락 디자인스튜디오 입사
2005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시퀄` 컨셉카 디자인 팀장
2007년 전기충전 자동차 `시보레 볼트` 디자인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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