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왜 이리 가혹하나요..아이티 대지진[그해 오늘]

전재욱 기자I 2023.01.12 00:03:00

2010년 1월12일 최빈국 아이티 덮친 강진
16만여명 숨지고 인구 3분의 1 이재민
대지진 여파 수습 못하고 무정부 상태로 혼란 지속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0년 1월12일 오후 4시53분. (현지시각) 북중미 카리브해에 위치한 아이티 공화국에서 리히터 규모 7.0의 초대형 강진이 발생했다. 하필이면 진원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남서쪽 25km의 지하 13km 지점이었다. 인구가 몰린 수도 근처에서 터진 대형 지진으로 피해가 컸다. 아이티 인구(984만명) 100명 가운데 1.6명이 사망(16만여명)하고 셋에 하나(300여만명)는 이재민이 됐다.

진흙쿠키를 먹는 아이티 여성.(사진=유엔세계식량기구)
아이티 지진 피해가 컸던 이유는 지진을 겪은 적도, 대비할 여력도, 수습할 능력도 없었던 환경이 꼽힌다.

아이티는 평소 지진이 잦은 지역이 아니었기에 건물 내진 설계에 둔감했다. 대통령궁이 전몰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국가 주요 시설도 힘없이 무너질 만큼 지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요 의료시설이 붕괴하는 바람에 부상자를 치료할 길이 막혔다.

대비할 여력도 부족했다. 당시 아이티 국내총생산(GDP)은 118억달러에 불과했다. 유엔 가입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었다. 식량 원조를 받아야 할 만큼 경제 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지진에 대한 대비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러니 스스로 재난을 수습할 능력도 없었다. 아이티 경제를 일부 떠받히던 관광 산업을 재건하려면 국내 환경을 재정비해야 했으나 불가능했다.

살아남은 이들도 고통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무정부 상태에 가까워졌다. 급기야 치안 공백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정국은 혼돈에 빠져들었다. 교도소가 붕괴하고 범죄자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으나 이들을 잡아들일 경찰이 없었다. 이듬해 아이티의 취약국가지수는 세계 5위였다. 이 지수가 높을수록 국가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아이티 인구 3분의 2가 생계를 기대는 농업은 지진으로 기반이 무너져버렸다. 빈부격차랄 게 없이 국민 대다수가 빈자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른이든 아이든 진흙으로 빚은 쿠키를 먹으면서 연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혹하게도 아이티를 둘러싼 상황은 최악의 연속이었다. 일부 정치인과 폭력배가 국제사회에서 이어진 구호품과 구호금을 착복했다. 국제사회는 일부 구호의 손길을 거뒀다.

대지진을 수습해야 하는 정치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이 괴한의 습격을 받고 암살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2021년 8월14일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이 다시 아이티를 덮쳤다. 2010년 당시보다 강한 지진이었다. 아이티는 현재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서 갱단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