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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학예연구사로 전시를 기획하면서 종종 빠지는 딜레마가 있다. 널리 잘 알려져 있거나 익숙한 명작, 모두가 사랑하는 작품을 내보일 것인가, 혹은 잘 모르고 어렵고 심지어 불쾌감까지 자아내기도 하는 첨단예술의 실험을 소개할 것인가. 앞의 경우라면 관람객 대다수에게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있을 테지만 뒤의 경우라면 그보다는 미술사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미술관 나들이를 일상처럼 즐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교양과 교육을 위해 작정하고 미술관을 찾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그 균형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 미술관은 이 둘 다에서 시작했으니 말이다. 미술관컬렉션은 17세기와 18세기 귀족이 향유하던 사교적인 취미생활과 ‘호기심의 캐비닛’이라 불리는 유희에서 출발했고, 국가제도가 성립하던 근대시기 제도로서 미술관은 대중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계몽주의의 첨병에 서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술관의 전시는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이 두 가지의 가치를 골고루 배려하는 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양쪽 모두를 수행할 작가와 작품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는 아주 드물게 심미적인 기쁨을 선사하면서도 아방가르드적 실험까지 수행해낸 근대의 거장이다. 화려한 색채와 생생한 활력, 자유로운 선이 꿈틀거리는 화풍은 야수주의, 표현주의, 추상 등 20세기 주요 미술운동의 경향을 다 담고 있는 동시에 선과 색채의 움직임만으로도 즉흥적인 만족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림 속 여인, 모델과 다르다는 지적 받자…“난 여성 아닌 그림을 그린 것”
마티스는 특히 야수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1892년 파리 장식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면서 루브르미술관을 다니며 공부했던 그는 1900년 이후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등 후기 인상주의에서 영향을 받았고,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크 등과 함께 야수파를 창시했다. 후기 인상주의와 야수파는 색채의 감정적인 표현과 윤곽·구조에 대한 실험이 특징이다.
특히 야수파는 대담하고 파격적인 색채를 사용해 그리는 대상의 형태까지 과감하게 변형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지배적인 색채가 안겨주는 감정이 너무 강렬하고 색채를 야수처럼 쓴다고 해 야수파란 닉네임이 붙었던 것이다. 마티스 역시 후에 나올 표현주의 그림처럼 자연색을 무시하고 주관적인 감정과 작가의 의도에 따라 그림을 그렸는데, 그가 여성을 그린 그림을 두고 모델과 전혀 비슷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자 “나는 여성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대답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마티스 작품에 흘러넘치는 흥겨운 색채는 그가 그린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 세계에 가까운 것이었다.
동시에 마티스의 작품은 1900년대 어느 작가보다 다가올 모더니즘의 주요 경향, 특히 추상의 방향성을 예견한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대표작 중 하나인 ‘디저트: 붉은색의 하모니’(1908)는 감각적이면서도 실험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의 4분의 3 이상을 덮고 있는 붉은색이다. 이 붉은색은 일반적인 붉은색보다 밝고 화려해 오렌지색에 가까운 느낌마저 준다. 그 색이 너무 도드라진 나머지 사실상 테이블과 벽지로 구분해야 할 3차원의 공간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당시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한창 실험하고 있던 큐비즘의 3차원 공간의 해체와 달리, 마티스는 표면을 덮은 색으로 3차원 공간을 납작하게 평면으로 눌러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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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공간의 해체와 추상의 길로 바로 나아가진 않았다. ‘디저트: 붉은색의 하모니’ 속 테이블 옆에는 여전히 원근법으로 그린 의지가 있고, 테이블 위에는 꽃병과 과일, 술병, 여인이 있어 그림의 평면이 현실세계의 일부란 것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시점이 어긋나 있다. 꽃병과 술병, 또 여인의 손에 들린 과일그릇조차 일정한 한 곳에서 바라본 시점에서 그려지지 않은 것이다. 테이블 바로 맞은 편에서 바라보며 그렸다고는 생각되지만, 그럴 경우 꽃병이 놓인 접시의 과일이나 여인이 손에 든 그릇의 알록달록한 내용물이 마치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이렇게 들여다보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착시를 일으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벽지와 테이블을 덮은 푸른색의 장식적인 나뭇가지 문양이 꿈틀꿈틀 움직이며 마치 공간 속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파리의 한 스튜디오에서 창 밖 수도원 정원을 보며 그렸다는 이 그림에서 내다보이는 그 수도원 정원 역시 ‘그림 속 그림’ 같은 효과를 낸다.
20세기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였던 3차원 공간(현실)을 2차원 공간(캔버스 평면)으로 전환하는 그 문제를 색을 이용해 경쾌하게 풀어나간 마티스의 스타일은 음악이란 주제를 만났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음악’(1939)은 카펫에 앉아서 악보를 보며 음악을 연주하는 두 여성을 그리고 있다. 평범하고 단순한 이 도상은 마티스가 색과 형태에 변주를 불어넣으며 리드미컬하고 추상적인 실험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색과 형태 서로 녹아들어 경쾌한 리듬의 ‘음악’ 만들어내
전면에 앉은 두 여인은 인물이라기보단 거대한 덩어리로 존재한다. 노란색과 푸른색의 덩어리인 이 두 여인의 팔과 다리가 향한 방향은 그림에 대각선의 리듬을 부여하는데, 푸른색 옷을 입은 여성의 지나치게 긴 다리는 바지 끝의 비죽비죽한 노란색 삼각형 무늬를 도드라지게 하는 동시에 뒤편의 붉고 흰 패턴의 삼각형 무늬와도 연결된다. 두 여성이 깔고 앉은 카펫의 색채와 무늬 또한 사물을 실제적으로 그려냈다기보다 색채를 구성한 것에 가깝다. 여인들 뒤에 드리운 식물의 패턴도 다르지 않다. 지나치게 거대화해 실제 식물의 이파리와 상관없는 초록의 형태를 구성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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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림은 노란색과 푸른색, 초록색과 붉은색, 삼각형과 줄무늬, 원형질의 패턴이 서로 녹아들어 경쾌한 리듬의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다. 마티스 예술의 최종 목표인 ‘균형의 예술, 순수하고 명징한 예술, 어둡고 탁한 감정을 피해 궁극의 평온함에 도달할 수 있는 조화’가 색과 형태로 온전히 구현돼 두 여인이 즐기는 음악의 즐거움으로 온전히 전해지는 것이다.
동시대 아방가르드의 파격과 미적 감각의 순수한 즐거움을 동시에 추구했던 마티스는 바로 이런 점에서 진정한 ‘균형자’이자 ‘매개자’라고 할 수 있다. 마티스는 예술가가 스스로 박자와 리듬으로 현실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위해 용기를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상사가 골치 아플 때 책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책상이 끌어내는 감정에 집중해 분출해보라고 젊은 작가들에게 충고했던 마티스. 그의 작품들이 그가 살던 시대보다 오히려 우리가 사는 현대에 더욱 시선을 끄는 이유이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