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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인정받은 이상재 외교문서…"자주 외교 노력 담겨"

이윤정 기자I 2022.03.22 00:00:05

미국공사왕복수록·미국서간 2건
''철도약장'' 초안·당시 물가 수록
"새로운 사실 기록돼 중요한 문서"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중국 공사는 매번 체제로 우리나라 공사의 위에 서고자 하고, 우리 공사 역시 그 밑에 있지 않으려고 한다. 대저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는 30여 국으로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지만 각국 공사와 서로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에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이는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을 욕보이는 것이다.”(1888년 5월 23일 이상재 서기관의 ‘미국서간’ 中)

독립운동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주미공사 서기관이었던 이상재(1850~1927)의 주요 외교문서 필사본과 편지가 문화재로 등록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 등 2건의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이상재는 1887년 주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돼 박정양 초대 공사와 함께 현지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이정수 학예연구사는 21일 이데일리에 “조선이 외교활동을 할 때 청나라에 허락을 구하고 활동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박정양 공사의 경우 자주적인 외교활동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마찰이 생겼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사진=문화재청).
‘미국공사왕복수록’은 공관원들의 ‘업무편람’에 해당하는 것으로, 미국정부와 주고받은 문서의 한문 번역본과 외교활동 참고사항을 담고 있다. 1883년 미국 아더 대통령이 초대 주한공사 푸트를 조선에 파견하며 고종에게 전달한 외교문서를 비롯해 미국정부 또는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각종 문서들, 조선왕조와 미국정부 간 현안사업과 관련한 문서들, 업무수행에 필요한 각종 비망록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당시 조미 간 현안사업 중 뉴욕 법관 등이 경인선 설치를 제안한 사실과 계약서인 ‘철도약장’ 초안이 함께 수록돼 있어 주목할 만하다. 경인선은 1896년 조선이 미국인 모스에게 부설권을 허가했으나, 모스가 이를 1897년 5월 다시 일본 측에 넘기면서 결국 1899년 9월 일본 측이 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자료를 통해 1888년 조선은 철도부설 사항을 미국 측과 논의하고 있었으며, 관련 계약서의 조문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수록을 번역한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주미전권공사 혹은 주미공사관의 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사관원이 직접 기록했을 뿐 아니라 종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의미를 뒀다.

‘미국서간’은 이상재가 주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된 1887년 8월부터 1889년 1월까지 작성했던 편지 38통을 수록하고 있다. 주된 내용은 미국에 파견된 기간 동안 부모의 안부를 묻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논하는 등 집안일과 관련된 것이다. ‘미국 상황(민주주의&물가)’이나 ‘공관의 임대료’ ‘청나라로 인한 업무 수행의 어려움’ 등 그의 활동상과 미국관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이상재는 2월 12일 서간에서 “중국공사가 체례(體例·지켜야 할 규례) 등사로 매번 트집을 잡아 소위 ‘진퇴유곡(進退維谷·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거나 물러서지 못하다)의 처지”라고 상황을 적었다. 또한 “관내의 일용 집기는 1천 500여 원으로 구입해두었다”든가 “배추 한포기 값은 우리나라 돈으로 역시 6~7냥이 넘는다” 등 당시의 물가 상황도 기록해 뒀다.

‘미국서간’(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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