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리딩방과 주식카페를 중심으로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추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인수합병(M&A)을 목적으로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여서 합병기업을 찾기 전까지는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데도, 지난달 말부터 신규 상장 스팩을 중심으로 급등양상을 보이면서 스팩 전반으로 투자열기가 확산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날마다 오르는 종목들의 면면이 바뀌고, 이내 급락세로 돌아서는 등 변동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시세조종 세력이 묻지마 투자로 스팩 주가를 돌아가며 올려놓고 빠지면서 뒤늦게 따라 산 개인투자자들이 폭탄을 떠안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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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SK5호스팩(337450)은 상한가를 기록했으나, 하이제6호스팩(377400)과 유진스팩6호(373340)는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날 하한가를 기록한 종목 2개 중 모두 스팩이 차지했다. 장 초반에는 SK4호스팩(307070), SK6호스팩(340350) 등 스팩 종목들이 상한가를 기록했으나 오후 들어서는 오름폭을 축소했다.
전날에는 무려 14개의 스팩이 상한가를 기록했으나 이날에는 하나머스트7호스팩(372290), DB금융스팩9호(367360) 등이 20% 넘게 하락하기도 했다. 이날 국내 증시에 상장된 스팩 종목들의 평균 주가 하락률은 7.93%을 기록해 전날 평균 12% 넘게 올랐던 것이 하루 만에 분위기가 달라지며 변동성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최근 증시에서 스팩의 이상 급등 현상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달 말부터다. 지난달 21일 약 11년 만에 코스피 상장 스팩인 엔에이치스팩19호(380440)와 삼성스팩4호(377630)가 동시에 상장했다. 이중 삼성스팩4호는 상장 이후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 기준가인 2000원에 비해 5배 이상 주가가 뛰었다. 이에 따라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되며 이날 하루 동안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보통 스팩은 상장 후 큰 변동성을 보이지 않다가 우량 기업과 합병을 결정하면 기대감에 주가가 오른다. 그러나 최근 급등 혹은 급락했던 스팩들은 합병 대상이 정해진 스팩들보다 더 큰 변동폭을 보이고 있다. 실제 합병 호재가 아직 없는 삼성스팩4호는 상장 후 7거래일 동안 기준가 대비 405% 올랐다. 그러나 메타버스 전문 기업인 엔피와의 합병을 앞두고 있는 삼성스팩2호(291230)는 같은 기간 158% 오르는데 그쳤다.
여기에 최근 증시가 뚜렷한 흐름을 보이지 않는 와중 단기 투자수익을 노리는 개인투자자 대상의 ‘주식 리딩방’ 등도 스팩 과열을 부추기는 요소로 제기된다. 실제로 최근 유료·회원제로 운영된다고 홍보되는 주식 리딩방 등에서는 ‘NH스팩으로 수익률 107%’, ‘교보스팩 무조건 180%’ 등의 홍보 문구가 넘쳐난다.
일각에서는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하고 증시도 주춤한데다 최근 SK아이테크놀로지 상장 이후 공모주 투자수익도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투기성 자금이 스팩으로 몰려온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이같은 자금 유입에 스팩이 이유없이 뛰자 개인투자자들의 뇌동매매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 지나치게 오르면 오히려 합병 발목… ‘투기 주의’
앞서 미국에서도 ‘스팩 과열’ 현상이 한 차례 불거진 바 있다. 지난 한 해 미국 증시에서 스팩을 통해 상장한 기업은 248개로, 지난 2019년(59개)에 비해 5배 가까이 급증했다. 올해에도 각계 유명인들까지 스팩 투자에 뛰어드는 등 열풍에 따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스팩 투자에 대한 규제를 검토 중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앞서 일어났던 ‘스팩 과열 현상’과 비슷한 양상이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라며 “단순히 기대감으로 인한 ‘프리미엄’이라기보다는 수급으로만 움직이는 과열 상태”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스팩은 기준가가 2000원 수준에, 유통물량도 적은 편인 만큼 수급의 영향으로 주가가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여기에 스팩의 주가가 지나치게 오르는 경우에는 스팩 자체가 갖는 합병 매력도도 떨어진다.
스팩은 합병가액을 산정할때 기준주가에 30% 내에서 할증, 혹은 할인율을 적용하는데 스팩의 기준가가 높아질수록 합병 금액도 높아지고, 이에 따라 합병 비율 역시 높아진다. 합병신주 상장일에 비상장기업 1주당 받는 스팩 주식수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따라서 비상장법인에게 가격이 높은 스팩은 합병 대상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 상장된 스팩은 모두 기준가인 2000원을 웃돌고 있다.
스팩이 3년 안에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하면 상장폐지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과도한 급등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투자자들 역시 투자 원금과 더불어 이자 수준만의 수익을 누리는 데 만족해야 한다.
최 연구원은 “스팩은 그 규모가 작은 만큼 공모주 투자의 대안이 될 수 없고, 2000원 언저리에 형성된 기준가 대비 지나치게 오를수록 피합병법인을 만나기도 힘들어진다”며 “그전까지는 단순히 수급으로만 움직이는 ‘페이퍼 컴퍼니’인 만큼 이와 같은 과열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기는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