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지 4일 만에 폐지를 결정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조선구마사는 지난 22일 첫 방송 직후부터 역사를 왜곡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1회에서는 훗날 세종대왕이 되는 충녕(장동윤 분)이 의주 근방의 명나라 국경 부근에서 구마 전문 신부 요한(달시 파켓)과 통역 담당 마르코(서동원)를 접대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 장면에서 중국 음식인 월병과 피단(오리 알을 석회 등이 함유된 진흙, 왕겨 등에 넣어 삭힌 것) , 중국식 만두, 중국풍 설정으로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 충녕대군이 역관에게 무시당하거나 태종(감우성)이 아버지 이성계의 환시를 보다가 백성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장면까지 등장하면서 조선건국사를 왜곡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
광고 지원까지 끊기며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SBS는 24일 “실존 인물과 역사를 다루는 만큼 더욱 세세하게 챙기고 검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사과했다. 또 다음 주 방송을 결방하고 내용을 재정비하겠다고 전했다.
SBS 사과에도 논란은 이어졌고 결국 방송사 측은 드라마 폐지를 결정했다. SBS는 26일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여 조선구마사 방영권 구매 계약을 해지하고 방송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자문한 역사학자 “우려 표하고 지적까지 했다”
드라마 폐지는 예견된 수순이었을까.
제작진은 역사학자에게 문제가 될 내용에 대해 지적을 받았음에도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구마사의 역사 논란이 불거지자 역사 자문을 한 학자에게 불똥이 튀었다.
이에 대해 이규철 박사는 “역사학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원칙대로 자문했다”며 “현재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표했고, 그 외 다른 부분도 다양하게 지적을 했다”고 한 매체에 전했다. 이어 “방영 전 최종 결과물을 볼 수 없었고, 역사자료에 입각한 학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이 안 돼 아쉬움이 크다”며 “현재는 저도 제작진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황현필 한국사 강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조선구마사를 집필한 박계옥 작가을 거세게 비판했다. 그는 “우리 역사를 깔아뭉개려는 의도 수준이 아니라 중국 역사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방원이 이성계 환영을 보고 백성들의 목을 쳤다. 태종을 ‘폭군’ 취급한 것”이라며 “충녕대군의 등장은 말에서 떨어지고 외국인 신부 심부름하는 어리바리한 인물로 그려졌다. 외국인 신부를 접대하기 위해 찾은 기생집에서 충녕대군을 욕보이는 장면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황 강사는 “조선구마사가 그리는 시기는 중국에도 외국인 신부가 등장하지 않았을 때”라며 “드라마에 등장한 칼도 중국식, OST도 중국 악기, 무녀 옷도 중국식이었으며 조선 대궐은 붉은색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21세기 대한민국 사극에서, 그것도 공영 방송의 드라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 화가 난다. 방영돼선 안 될 드라마다. 누구나 다 함께 분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작사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 중단할 것” 누리꾼 ‘촬영물 전량 폐기’ 촉구
|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중국 누리꾼들은 웨이보를 통해 ‘당시 한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드라마 장면을 옹호하기 시작했다”며 “특히 최근 중국이 한복, 김치, 판소리 등을 자신의 문화라고 주장하고 ‘新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제작진 역시 ‘예민한 시기’라고 언급했듯 이런 시기에는 더 조심했어야 한다. 이미 한국 드라마는 글로벌화가 돼 정말 많은 세계인들이 시청하고 있다. 우리 훌륭한 문화와 역사를 알리기도 시간이 모자란데 왜곡된 역사를 해외 시청자들에게 보여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IT(정보기술)기업 텐센트가 운영하는 동영상 스트리밍 웹사이트인 위티비(WeTV)와 텐센트가 자산 인수한 말레이시아 스트리밍 사이트 아이플릭스에는 조선구마사를 소개하면서 ‘북한이 세워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드라마’라 적었다. ‘바티칸이 불교 국가인 고려를 대체하기 위해 북한 건국을 지지했다’는 황당한 문구도 있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제작진은 “번역 오류로, 플랫폼에 수정을 요청했다”고 해명한 후 “악령에 대한 판타지 드라마”라는 설명으로 수정했다.
누리꾼즌들은 드라마 폐지 발표 후 촬영분을 전량 폐기하라고 목소리를 냈다. 26일 SBS 상암동 사옥에서는 이와 관련한 트럭시위가 진행되기도 했다.
결국 제작사는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 “해외 판권 계약 건은 계약 해지 수순을 밟고 있다”며 “서비스 중이던 모든 해외 스트리밍은 이미 내렸거나 금일 중 모두 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 국제청원 사이트인 ‘체인지닷오아르지’에는 조선구마사를 글로벌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인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에 한국네티즌들은 업로드를 요청하는 해외 팬의 청원을 명예훼손으로 신고하는 방법을 공유하며 또 한 번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누리꾼들은 ‘이 청원은 한국과 한국 역사에 대한 존경심 하나 없는 일부 무지한 사람들이 한국과 한국 국민에 대한 명예훼손을 바탕을 두고 있다. 드라마는 의도적으로 한국사를 왜곡해 방송사와 이미 제작사가 방영을 중단하고 관련 스트리밍을 전면 철회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일부 무지한 팬들이 이 무례한 탄원을 올렸다. 일시 중지하라’라는 글을 올리며 신고에 동참하고 있다.
누리꾼들은 “남의 나라 역사에 말 얹지 마라. 너희 역사도 왜곡되어봐라”, “넷플릭스에서 ‘킹덤’이나 봐”, “이래서 촬영분 전량 폐기처분 해야 한다. 스트리밍 될 여지를 주면 안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