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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모든 것이 생생해"…거짓기억에 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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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17.06.07 00:15:30

기억작동 원리·과정서 생기는
오류·착각·불완전 낱낱이 들춰
쉽게 조작·왜곡…자신도 속아
허구 빚어 가짜경험 만들수도
거짓기억 인정해야 창의성 발휘
……………………………………
몹쓸 기억력
줄리아 쇼|352쪽|현암사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응애~! 드디어 내가 세상에 나왔다. 감격스러워 눈물까지 찔끔 보이는 엄마 아빠의 얼굴이 보인다. 코가 오뚝하네, 눈이 크네, 머리숱이 어쩌면 저리 많지 등등 여기저기서 울리는 탄성도 들린다. 아, 난 그 모든 걸 낱낱이 기억한다.” 정말 그런가. 이 거짓말을 믿으라고? 아니다. 만약에 사실이라면. 생애 첫날은 기억할 수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기억한다는 건 내 존재를 증명하는 일인데.

그런데 이뿐인가. 반대의 가정도 가능하다. “어느 날 아참에 깨어났더니 머리가 싹 비어 있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이제껏 뭘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럴 수 있나. 이건 거짓말이 아닌 듯하다. 큰일이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내 존재를 잃는 일인데.

도대체 이 기억이란 걸 지켜야 하나 버려야 하나. 결정을 위해 먼저 할 일이 있다. 무엇이 기억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간파하는 것이다. 이 숙제를 해결하러 캐나다 출신 법정심리학자이자 기억연구가인 저자가 나섰다. 기억의 실체가 낱낱이 들춰진다. 그런데 타협의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보통 “확실해!”로 단정하는 사람의 기억이란 게 얼마나 불완전하고 쉽게 조작되는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저자의 전문영역은 ‘거짓기억’. 기억이 작동하는 원리·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오류·착각을 사정없이 들춰내는 일이다. 그렇게 속살을 드러낸 거짓기억은 상대를 현혹할 만큼 대담하고 스스로를 속일 만큼 치밀하다.

▲자궁 속에 있던 때를 기억한다고?

겉으로 볼 때 저자는 중의적 태도를 유지한다. ‘나는 기억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명제를 세워두고, 명백한 진실인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억지란 양끝을 왔다 갔다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게 있다. 진실과 억지를 오가는 중에도 기억이란 건 아주 간단히 왜곡되고 변질된다는 사실이다. 그러곤 “과학적 근거와 순수한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엉뚱한 장난을 보태” 기억이 뒤틀리는 원리가 뭔지를 알아보자고 한다.

구글검색을 잠깐 이용하면 흥미로운 결과를 볼 수 있단다. ‘나는 태어난 순간을 기억한다’에 ‘예스’를 외친 결과는 6200만개에 달한다. ‘갓난아기 시절이 기억난다’는 결과는 1억 5400만개. ‘자궁 속에 있던 때를 기억한다’도 있다. 무려 900만개. 저자는 이 어마어마한 숫자 앞에서도 태연하다. 대단히 놀랍지만 진짜기억은 아니라고 단칼에 잘라버린다. 왜냐고? 아기의 뇌는 생리적으로 장기기억을 형성·저장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단다.

사람에게는 최초의 기억이란 게 있다. 머리 위를 돌던 모빌, 음악이 나오는 곰인형, 바나나이유식 같은. ‘생생한 기억’이란 수식이 늘 따라붙지만 대개는 ‘생생한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사진·대화 등 다른 통로로 얻은 정보가 기억의 빈틈을 채운 것이란 설명이다. 한마디로 출처를 혼동했다는 것이다. 그 극단적인 형태가 ‘자궁 속이 어떻고’ ‘태어난 병원이 어쩌고’가 될 테고.

▲찰흙처럼 빚을 수도 있는 기억

찰흙처럼 빚을 수도 있다. 그릇이 아니다. 기억 말이다. 실제경험을 찰흙 반죽하듯 허구의 기억으로 빚어 가짜경험을 만들어내는 능력. 인간은 타고났단다. ‘내가 공주였어’ ‘장군이었거든’ 정도면 그냥 만화 한 편 보는 셈 치면 된다. 문제는 이런 거짓기억이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으로 연결될 때 생긴다. 누가 범죄를 저질렀다, 개에게 물렸다, 괴물체를 봤다 등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믿고 있다면 말이다. 설마 하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 기억의 과학적 원리를 주도면밀하게 응용하면 기억을 왜곡하는 일쯤은 충분히 해치울 수 있다는 거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실험을 했다. 성인 65명에게 가짜기억을 주입한 일명 ‘화채그릇 쏟기’다. ‘다섯 살 때 당신은 가족의 결혼피로연에서 뛰어놀다가 테이블 위 화채그릇을 신부 부모에게 몽땅 쏟아버렸다.’ 충분히 일어날 법한 사고가 아닌가. 결혼피로연·화채그릇·신부 부모는 누구나 다 상상할 수 있다. 한 주 뒤 실험자에게 “기억납니까”라고 물었다. 결과는? 25%가 “기억난다”고 대답했단다. “상황은 기억이 나나 화채를 쏟은 적은 없다”는 대답도 12.5%나 됐다고.

▲기억이 미심쩍다는 걸 인정하라

‘기억은 교활하다!’ 저자의 주장은 확고하다. 나를 위해서든 상대를 위해서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니까. 감정이나 기분, 컨디션은 수시로 끼어든다. 그 오류를 지적하려고 저자는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못생겼다”는 충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기본적인 기억작용, 그 심리를 활용한 기술이 실제보다 낫다고 느끼게끔 만든다는 거다. 지금 거울을 보고 있지 않다면 자신의 외모에 대한 지각은 기억뿐. 그저 페이스북 플랫폼에 걸어둔 사진이 자신이려니 확신하도록 내몰고 있단 소리다.

대신 ‘기억력이 나쁘다’는 자책은 더이상 하지 말란다. 기억은 네트워크고 연상이라고. 연결망을 그려두고 관련 정보를 떠올리면 기억력은 나아질 수 있다고 했다. ‘망각’은 인생의 중요한 덕목이라고까지 위로한다. 뉴런 연결을 깔끔하게 손질해 뇌가 중요한 정보만 저장케 하는 게 망각이라고. 잠은 잘 자라고 조언한다. 기억을 강화하고 재편성할 수 있다고. 다만 속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자면서 영어단어를 외운다는 수면학습, 날씬한 몸을 상상하라는 잠재학습 등. ‘그거 말짱 헛소리야!’가 결론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거짓기억은 있다고 했다. 그러니 기억을 맹신하지 말고 미심쩍다는 걸 인정하라고. 그래야 기억으로 입을 피해를 줄이고 유연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장면을 바꿔보자. 달콤한 속삭임이 울린다. “너의 목소리·제스처·체취, 모든 것이 생생해.” 그 기억을 철석같이 진짜로 믿는 건 상대의 영역이지만 그 기억에 속아줄 건가 말 건가는 자신에게 달렸다. 굳이 친절하게 거짓기억이라고 일러줄 필요가 없다면 그냥 덮는 것도 방법일 거다. 저자는 질색할지 모르지만 ‘기억세탁’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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