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정보기술(IT) 업체 회계과에 근무하던 강 모 씨(32세)는 아이를 낳고 봐줄 사람이 없어 친정이 있는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를 갔다. 친정 부모에 아이를 맡기고 그 근처 일자리를 얻어 볼 요량이었다. 회계부문에서 7년 정도 일한 경력이면 직장 구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다. 아이 때문에 정시에 퇴근할 수 있고 주 5일 근무인 직장을 알아봤지만 조건이 맞는 곳이 없었다. 전업주부로 눌러앉을 것인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서울로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 중이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은 활발해지고 있지만 벽은 여전히 높다. 특히 임신과 출산,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의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자녀를 모두 키워놓고 취업전선에 나선 40~50대 중년 여성들은 계약직 단순노동 말고는 받아주는 곳이 없고, 경력이 단절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여성들도 육아에 어느 정도 신경 써야 하는 만큼 기업들이 탐탁지 않아 한다.
임신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고 첫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김 모 씨(31세)는 “20대 초반에는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꿨는데 지금은 집에 퍼져 있는 아줌마가 됐다”며 “다시 취직하고 싶지만 누가 서른 넘은 애 딸린 아줌마를 취직시켜 줄까 걱정”이라고 한탄했다.
‘애 키우느라…’ 경력 단절 숙명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인구 대비 취업자 수 비율(고용률)은 48.1%였다. 남성의 70.5%에 비해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육아와 가사다. 육아와 가사를 이유로 집에 들어앉은 여성은 작년 717만6000명으로 전체의 68%를 차지했다. 통학이 19%였고 연로가 6.3%, 그냥 쉬었거나 심신장애가 이유인 경우가 6.8%였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이 많은 만큼 여성 고용률을 연령대별로 보면 M자 형태를 나타낸다. 작년 20대에서는 58.7%였던 고용률이 30대에서는 53.7%로 낮아졌다가 40대에 다시 64.9%로 올라갔다. 50대에서 57.7%로 떨어지고 60세 이상에서는 26.6%로 더 낮아졌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여성 인력 활용도는 낮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15세부터 64세 여성 인구의 고용률은 52.6%로 OECD 평균 56.7%를 밑도는 수준이다. 35개국 가운데 28위로 하위권이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등 유럽 국가의 여성 고용률이 70%를 넘는 것과 대조적이다.
재취업해도 불안정
문제는 이런 경력단절을 겪은 이후 여성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경력단절 주요 이유인 출산이 주로 30대 초반에 이뤄지는데 이 나이대가 경력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임금근로자로 취업한 여성 가운데 절반만이 상용근로자였고 39%는 임시근로자, 11%는 일용직이었다. 주 36시간 미만의 단시간 근로자 비중도 점차 증가세다. 지난 2009년 여성 취업자 가운데 단시간 근로자는 18.8% 수준이었지만 작년에는 24.8%로 높아졌다. 시간제로 일하는 여성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그만큼 사회의 벽이 높기 때문이다. 2011년 한국노동연구원이 100인 이상 사업체 800개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1.7%는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여성보다 남성을 채용하겠다고 답했다.
여성의 업무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진다는 이유가 24%로 가장 높았고, 여성은 가정에 신경 쓰기 때문에 직장생활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답도 20.9%에 달했다. 신규 채용시 기혼여성이 배제될 가능성이 제일 크고, 그 다음이 미혼여성 기혼남성 미혼남성 순이다. 1년 육아휴직 이후 복직한 직장인 강 모 씨는 “육아휴직을 하면서 진급에서 계속 빠졌다가 올해 겨우 승진했다”며 “미혼과 기혼, 아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인식차이가 심하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직접 창업에 나서는 여성도 많다. 작년 여성 자영업자는 158만 명으로 이 중 80%가 고용원 없이 혼자 꾸려가는 영세한 자영업자였다. 무급으로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일하는 여성도 108만 명이었다.
서울시 여성능력개발원 김순경 부장은 “개발원을 찾는 여성들을 보면 2010년부터 취업보다 창업을 원하는 여성이 많아졌다”며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 여성들이 취업하기는 어려우니까 보육이나 유통 관련 업종 창업에 주로 나선다”고 말했다.
보육시설 확충하고 ‘질 좋은’ 파트타임 늘려라
“마음 놓고 아이 맡길 곳이 있으면 좋겠다.”
직장 맘 생활 3년 차인 강 모 씨(35세)는 예상치 않게 야근이라도 걸리는 날에는 안절부절못한다.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를 저녁 8시 전에는 데려와야 하는데 남편도 일이 있고 대신해줄 사람도 없고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워킹 맘이 가장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소연하는 것은 보육시설 확충이다. 경력단절 없이 사회생활을 이어가려면 무엇보다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곳이 필요하다.
단시간 근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주 36시간 이하의 단시간 근무는 대부분이 비정규, 임시직이기 때문에 보통 파트타임(시간제)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규직에 비해 차별이 뚜렷하다. 고용보험과 건강보험 가입률은 정규직이 70% 이상인데 반해 시간제는 13% 수준이다. 시간외수당도 정규직은 55%에 지급하고 있지만 시간제에는 6.4%만 적용된다.
근로시간이 적을 뿐 정규직과 비교해 4대 보험 가입이나 보수, 처우 등에서 차별을 두지 않는 단시간 근로제를 정착시킨다면 여성인력 활용도도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서울시 여성능력개발원에 따르면 남자는 80~90%가 하루 8시간 이상 근무를 원하지만, 경력단절 여성은 절반 이상이 파트타임을 원한다. 물리적으로 파트타임이 아니면 집안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단시간 근로를 한 30대와 40대 여성 가운데 자발적으로 택한 비중은 각각 59%, 53%에 달한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여성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탄력적, 선택적 유연근무제가 확산돼야 한다”며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과 단시간 근로자의 근로여건 개선은 앞으로 개선 과제”라고 말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공략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고용의 주체는 기업이고 기업 CEO의 의식과 자세가 여성인력 육성에 매우 중요하다”며 “모범사례를 개발하고 홍보하는 한편 CEO들이 수강하는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에 여성인력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