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공정위가 약자(弱者)를 울리는 법

하수정 기자I 2007.05.20 12:10:00

4대 메이커에 가격담합 피할 길 터주고
입찰 참여 안 한 지방중소업체에 과징금

[이데일리 하수정기자] "메이커 없는 중소 교복업체들을 들러리로만 세우는 공동구매 입찰에 왜 참여합니까. 어차피 다른 대형 업체가 선정될텐데요. 그런 입찰에 참여 안했다고 과징금까지 부과하다니 정말 억울합니다".

부산의 중소형 교복 제조업체 모임인 경남학생복협의회 황병규 회장은 이데일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일 경남학생복협의회가 공동구매 방해 행위를 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대한 반응이다.

사연은 이랬다. 창원 봉림중학교 입학을 앞둔 학생의 학부모들이 교복 공동구매 입찰을 실시했는데 이 지역 교복 제조 판매업체 모임인 경남학생복협의회는 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이번 입찰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아니라 학부모들이 자율적으로 모인 교복 공동구매추진위원회에서 실시한 것으로, 주최측이 이미 대형 교복 브랜드인 스쿨룩스를 염두에 두고 다른 중소업체들은 들러리로 세우는 데 불과했다는 게 황 회장의 설명이다.

사전에 미리 선호도에 대한 조사를 한 데다, 1벌당 15만원 정도를 책정해 두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아이들에게 선호도 조사를 하면 당연히 대형 메이커가 나올 수 밖에 없고, 중소업체들은 공동구매가 아니더라도 이보다 가격이 낮은 13만~14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

결국, 스쿨룩스는 벌당 14만7000원 정도에 공동구매 낙찰이 됐고, 경남학생복협의회의 중소 업체들은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맞는 결과가 됐다.

황 회장은 "회원 수는 20개 정도이지만 식당이나 세탁소로 바꾼 사람들도 있어서 실제로는 7~8곳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교복 공동구매를 방해한 업체들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구매를 바라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중소형 교복 업체들의 경영은 대형 교복 메이커들의 진출로 상당히 어려워지고 있다"며 "현재 인건비 정도는 건지고 있지만 점점 설 땅이 없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물론 경남학생복협의회가 입찰에 다 같이 참여하지 않기로 공동 행위를 했다거나, 입찰에 참여한 회원사를 협의회에서 제명 조치한 사실은 위법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교복 공동구매 입찰 자체가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다면 그들에게도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공정위 관계자도 "경남학생복협의회가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지만, 공동행위에 대한 본보기로 제재를 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에서 4대 교복 메이커 중 아이비클럽과 스쿨룩스 본사에 대해서만 제재를 내렸으며 과징금 규모는 각각 1000만원, 500만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대리점이나 중소 사업자단체에 대한 시정명령, 서면통지 등의 가벼운 조치들이다.

`바가지 교복값` 논란은 대형 메이커들의 가격 담합 의혹, 과도한 마케팅 비용에 따른 소비자 전가 등의 문제가 지적되면서 불거졌지만, 결국 공정위는 가격 담합을 적발하지 못했다.

연초부터 공정위는 교복 가격 담합에 대한 현장 조사에 들어가기도 전에 단속 방침을 대대적으로 밝혀왔다. 업체들에게 자율 시정의 계기가 되기도 했겠지만 동시에 증거 인멸의 기회도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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