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코프리 유산, RPT에 그대로…표적항암제 강자될 것”

나은경 기자I 2024.10.11 09:47:07
[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블록버스터 신약 등극을 눈앞에 둔 뇌전증치료제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 다음 타자로 방사성의약품(RPT) 항암제를 낙점한 SK바이오팜(326030)이 시장의 주목과 호기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엑스코프리 상용화로 실력을 입증한 회사지만 항암제 분야에서는 아직 외부에 능력을 입증한 적이 없는 데다 RPT라는 기술 자체가 아직 상용화된 신약이 2개에 불과할 만큼 초기 단계의 기술이어서다.

박숙경 SK바이오팜 연구소장이 경기도 판교 SK바이오팜 본사에서 이데일리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SK바이오팜)


이데일리와 만난 박숙경 SK바이오팜 연구소장은 “처음 SK바이오팜에 합류했을 때부터 저분자화합물로 표적항암제를 개발한다는 큰 틀을 갖고 왔다”며 SK바이오팜이 항암제 연구·개발(R&D)을 시작한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음을 강조했다. RPT 분야에서도 엑스코프리에 이은 연타석 홈런을 자신했다.

SK바이오팜에서 항암제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박숙경 소장은 LG생명과학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CJ헬스케어를 거쳐 2016년 SK바이오팜에 합류하기까지 26년간 항암제 연구에 전념해온 전문가다. 그런 그가 중추신경계(CNS) 관련 질환에 두각을 드러내던 SK바이오팜에 합류한 것도 항암제 개발에서 역시 성공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SK바이오팜은 2016년 당시에도 국내에서 독보적으로 신약개발 역량을 쌓아왔던 곳으로, 자력으로 미국에서 임상시험승인(IND)에 진입하고 활발하게 연구개발을 하는 곳 자체가 드물던 때였다”라며 “특히 저분자화합물 신약 개발에 있어서 20년 이상 축적된 R&D 역량은 다른 회사에서는 쉽게 갖추기 어려운 핵심역량이라고 판단해 이를 항암영역의 틈새시장으로 전환시키려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고자 했다”고 입사 당시를 떠올렸다.

실제로 이 같은 연구 이력은 SK바이오팜의 파이프라인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현재는 RPT 연구에 힘을 싣기 위해 개발을 중단했지만 임상에 진입했던 SK바이오팜의 유일한 항암제 파이프라인인 SKL27969가 대표적이다. 표적항암제 SKL27969는 CNS 분야에 강점을 지닌 SK바이오팜 답게 뇌종양 및 뇌전이암과 같은 신경종양학을 주된 타깃으로 했다.

다만 RPT 항암제는 신경종양학에 국한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 소장은 “SK바이오팜이 지닌 CNS 분야의 강점이 저분자화합물 신약의 CNS 투과율을 최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신경종양학 외 항암제 개발에서도 불필요한 CNS 투과율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SK바이오팜은 ‘10년 뒤 RPT 항암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도전적인 선택을 이어가고 있다. RPT 분야를 차세대 신약개발 연구과제로 선택한 것뿐 아니라 이를 실현시킬 방사성동위원소(RI)로 악티늄-225를 고른 것도 마찬가지다. 악티늄-225는 희소성이 커 RPT 신약에서는 아직 상용화된 바 없는 물질이다. 악티늄-225를 활용한 RPT 신약 중 가장 연구단계가 빠른 것이 임상 3상 중이다. 국내 RPT 연구개발사 중 악티늄-225를 쓰는 곳도 SK바이오팜뿐이다.

박 소장은 “R&D 과제를 선택할 때 기존 연구영역과 핏(fit)이 맞느냐, 아직 경쟁자들이 많지 않아 우리가 기술적 해자를 형성할 수 있느냐를 중요한 기준으로 두고 선택했다”며 “항체-약물접합체(ADC)가 표적항암제 분야에서 많이 주목받고 있지만 SK바이오팜이 지닌 역량을 접목해 이미 경쟁이 치열한 이 시장에 다시 뛰어드는 것은 이점이 크지 않다고 봤다. 반면 RPT는 검증이 ‘일부’ 확인돼 우리가 기술 선점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기술”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RPT는 저분자화합물 연구에 강점이 있는 SK바이오팜이 잘할 수 있고, 특히 SK가 2022년 테라파워에 선제 투자해 공급권을 갖고 있다는 이점이 있던 데다, 10년 뒤 시장에 진입했을 때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분야”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SK바이오팜이 밝힌 SKL35501의 향후 개발계획 (자료=SK바이오팜)


물론 이 같은 선택이 가능한 이유는 ‘믿을맨’ 엑스코프리가 있어서다. 신경질환분야 연구소가 엑스코프리의 적응증을 확대해가며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기에 항암분야 연구소가 리스크를 감수하며 미래 먹거리를 탐색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SK바이오팜의 매출총이익률은 95%를 넘는다.

엑스코프리의 성공을 토대로 신약개발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협업 및 투자들도 이의 일환이다. 앞서 SK바이오팜은 RI를 활용한 전임상 연구시설 및 생산시설을 갖춘 한국원자력의학원과 연구협력 파트너십을 체결, 초기 진입장벽을 극복했다. 이밖에 앞서 홍콩 바이오기업 풀라이프 테크놀로지에서 도입한 후보물질 SKL35501 외 다른 RPT 후보물질 도입도 검토 중이다. RI의 반감기를 감안해 공급처 다변화도 염두에 두고 있다.

박 소장은 “Ac-225는 현재 연구·개발 단계에서 필요한 만큼의 공급량은 안정적으로 보유하고 있지만 추후 더 많은 RI가 필요할 때를 위해 공급망 다변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자체적으로 수행한 기술 투자 동향을 분석한 결과, 향후 5년 내에 GMP 등급의 Ac-225 생산과 글로벌 공급이 좀 더 원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가 오기 전까지 경쟁자가 쉽게 확보할 수 없는 Ac-225로 디스커버리 및 초기 개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GMP 등급의 Ac-225가 원활히 확보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 후기 개발로 진입해 차별적·선제적으로 RPT 분야 기술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고 개발 청사진을 설명했다.

앞서 미국에서 모든 개발을 우선 진행했던 엑스코프리와는 달리 RPT 신약은 한국 출시를 초기 개발단계에서부터 염두에 두겠다는 뜻도 밝혔다. 2019년 FDA 허가를 받은 엑스코프리는 정작 국내에서는 처방이 불가능하다. 올 초 동아에스티(170900)가 SK바이오팜으로부터 엑스코프리의 상업화 권리를 이전받아 내년 신약허가신청을 목표하고 있는 상태다.

박 소장은 “앞서 엑스코프리를 개발하던 당시에는 국내에 영업조직이나 허가조직이 없었고 FDA 승인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진행해 국내 인·허가에 있어서는 미진한 면이 있었다”며 “앞으로 개발되는 신약들은 한국과 미국에서 임상 진입 및 개발을 동시 고려할 예정이다. 특히 RI라는 반감기가 있는 물질을 다루기 위해서는 RI를 공급받은 이후 어디서 가장 빨리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하고 지금 상황으로는 한국과 미국이 최적의 위치라 양국 모두 우선순위에 있다”고 했다.

박숙경 SK바이오팜 연구소장이 경기도 판교 SK바이오팜 본사에서 이데일리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SK바이오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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