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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환자 곁 지킨다고 조리돌림, 의사 윤리는 허울 뿐인가

논설 위원I 2024.03.11 05:00:00
의료계 일각에서 진료 거부 등 사실상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병원에 남아 환자를 돌보는 전공의들을 비난하며 따돌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공의를 포함한 의사와 의대생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최근 환자 곁에 남아 있는 전공의 명단이 게시됐다. 작성자는 이를 ‘참의사 명단’으로 지칭해 조롱의 뜻을 담았고, 여기에 “평생 박제해야 한다”는 등의 협박성 댓글들이 달렸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최고 지식인임을 자부하는 의사들이 시정잡배도 꺼리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환자 진료는 의사의 존재 이유이자 의사 윤리의 최고 기준이다. 진료 현장을 지킨다고 동료 의사들을 집단 따돌림의 대상으로 삼다니 어이가 없다.

대한의사협회가 병원에 남은 전공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는 글도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의협은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의료계 전체의 집단적이고 암묵적인 블랙리스트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복귀에 보이지 않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복귀하지 않아 받을 처벌보다 복귀해서 당할 집단 따돌림이 더 두렵다”는 전공의들의 익명 증언이 나오는 것을 보니 그렇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하며 사직 등으로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가 지금까지 전국에 걸쳐 1만명을 훌쩍 넘었다. 이로 인해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 공백이 심각해져 환자들의 불편과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렇거나 말거나 의사도 국민이자 개인으로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질 수 있고, 그런 의견을 말이나 글, 행동으로 표출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집단행동을 벌이고, 불참자에게 사적 보복을 가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으로 처벌 대상이다.

정부는 ‘참의사 명단’ 작성과 유포에 관여한 사람들을 수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울러 의협에서든 의료계 일각에서든 ‘전공의 블랙리스트’로 간주될 수 있는 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미복귀 전공의들에게 복귀 후 직업상 보복을 감수하면서까지 복귀를 강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용기를 내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가 복귀한 전공의 조리돌림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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