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던 와중에 최씨에게 동원 예비군 훈련에 참석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최씨는 훈련소에서 받게 될 총기를 이용해 범행을 저지르기로 계획을 짰다. 우발적인 범행이 아닌 이유는, 최씨의 품에서 나온 유서를 보면 알 수 있다. 훈련소 첫날 최씨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에는 ‘내일 사격을 한다. 다 죽여버리고 나는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격 훈련은 예비군 훈련 2일차 오전에 이뤄졌다. 사로에 들어선 최씨에게 총알 10발이 주어졌다. 첫발을 표적지를 향해 발사한 최씨는 이후 총알 7발을 주변 예비군에게 발사했다. 난사라기보다는 조준 사격이었다. 예비군 4명이 총에 맞았다. 1명은 현장에서 숨을 거뒀고 1명은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최씨가 피해자에게 사격을 하면서 웃고 있었다는 게 이날 생존자 증언이다. 최씨는 9번째 총알을 스스로에게 발사해 목숨을 끊었다. 23살이었다. 최씨의 유족은 시신을 인도받아 화장했다. 유서에는 화장이 아니라 매장을 해달라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격 훈련 중에는 총기에 안전 고리를 채워야 하는데 최씨의 총기는 그러지 않았다. 눈속임으로 조교의 통제를 벗어났던 것이다. 다른 예비군의 총기에는 안전고리가 채워져 있었다. 이런 터에 최씨에게 대응 사격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사격장 통제가 미흡했던 이유는 인원 부족 탓이었다. 20개 사로에 들어선 예비군을 통제하는 기간병은 6명에 불과했다. 사로에 1대 1로 기간병을 배치했더라면 최씨의 행동을 저지했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사고 후 대처도 일을 키웠다. 가슴에 총상을 입은 예비군을 병원으로 옮기기까지 30분 가까이 걸렸다. 현장에 마땅한 구급차가 없었던 탓이다. 결국 이 예비군은 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우울증을 앓는 예비군에게 실탄을 지급한 것도 잘못이라는 지적도 뒤따랐다. 이 사건 이후 정신질환 전역자는 예비군에 편성하지 않기로 규정이 바뀌었다. 아울러 사격 훈련을 받는 예비군에게 방탄복과 방탄헬멧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맨몸으로 훈련을 받았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