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8월 국군은 여성 (의용) 군인을 모집하고자 이런 슬로건을 내걸었다.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병력을 충당하고자 한 것이다. 슬로건에서 읽히듯이, 징집을 피하려는 남성 탓에 국군은 골머리를 앓았다. 전선이 남으로 밀리면서 전세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나라를 지키려는 판국에 성별을 가리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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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은 여자의용군교육대 창설일을 여군 창군 일(日)로 삼고 있다. 여성 군인은 일찌감치 1948년 5월 탄생(육군병원에서 복무한 1기 간호장교후보생 31명)했지만, 여군 부대가 창설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여자 의용군은 곧장 낙동강 전선에 투입돼 활약했다. 이들의 활약상을 기반으로 여군은 군에서 역할을 넓혀나갔다. 육군에 달린 여군은 1959년 1월 여군과에서 여군처로, 1970년 여군단으로 각각 승격했다. 그러나 여군단은 1990년 해체했고 1991년 여군 병과가 폐지됐다.
굳이 남성과 구분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그때부터 일반 병과에서 여군은 보병과 정보 병과까지 역할이 확대됐다. 육군은 2015년 군종과 포병, 방공 병과를 여성에게 개방해 모든 병과에서 여성을 수용했다.
장교 양성 과정에서는 공군사관학교가 1997년 처음으로 여생도 입교를 시작했다. 육군사관학교는 1998년, 해군사관학교는 1999년 차례로 여성을 생도로 받아들였다. 2010년은 대학교에 여성 학생군사교육단(ROTC)이 창설됐다.
여군 비중은 날로 늘어나 현재 군인 10명당 약 1명꼴이다. 이은정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이 올해 3월 작성한 보고서 여군 확대 추세 분석과 정책 방향을 보면, 국군에서 여군 비중은 지난해 8.1%를 차지했고 올해는 8.8%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 여군은 1600명이고 비중은 1%에 불과했다. 약 30년 새 여군은 100명당 1명에서 10명당 1명까지 비약적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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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성장은 아직 숙제다. 병과 별로 보면 군의 70%를 차지하는 전투 병과의 여군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여군은 특수(23%)와 행정(19%), 기술(10%)에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