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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가을②] 남한강 따라 억새와 들국화가 흐드러지다

강경록 기자I 2017.11.05 00:00:02

한국관광공사 11월 걷기여행길
중원문화길 1코스 생태탐방길
글, 사진= 진우석 여행작가

중원문화길(사진=한국관광공사)
중원문화길(사진=한국관광공사)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충주는 예로부터 나라의 중심에 자리한 벌판이었다. 고구려 때에 ‘나라의 벌판’이란 뜻으로 국원성(國原城)으로 불렀고, 신라 때에‘가운데의 벌판’이란 뜻으로 중원(中原)이라 했다. 아울러 삼국시대부터 교통의 요지로 이곳을 차지하는 나라가 전성기를 맞이할 만큼 전략적 요충지였다. 하지만 지금의 중원 땅은 남한강이 대지를 적시는 평화로운 고을이다.

◇신립장군이 몸을 던진 열두대

중원문화길은 충주의 대표적 문화유산과 풍요로운 자연을 둘러보는 길이다. 2코스 역사유적길이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길이라면, 1코스 생태탐방길은 탄금대에서 남한강을 따라 이어지며 여유롭게 도심의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출발점은 탄금대공원이다. 충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걸어가면 20분쯤 걸린다.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데서 유래한 탄금대(彈琴臺)는 중추를 대표하는 문화유적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우륵은 가야국의 음악가로서 가실왕의 명을 받아 가야금 곡조 열두 곡을 지은 사람이다. 그는 진흥왕 12년(551) 쇠퇴해가는 가야국을 떠나 가야금을 들고 제자 이문과 함께 신라에 투항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받아들여 지금의 충주에 살게 했다.

탄금대공원에서 중원문화길의 이정표는 감자꽃 노래비 앞에 있다. 일단 탄금대공원의 최고 명소인 열두대를 보고 출발하는 게 좋다. 신립장군과 팔천고혼 위령비를 지나면 야트막한 봉우리가 보인다. 이정표가 없지만 그곳에 탄금정과 열두대가 자리한다. 탄금대는 본래 대문산이고, 탄금정이 대문산의 가장 높은 지점이다. 탄금정으로 오르는 길은 솔숲이 일품이다. 나무들이 허공에 곡선을 그리는 모습이 자유롭다. 탄금정 아래로 계단을 좀 내려가면 강을 마주보는 벼랑인 열두대를 만난다.

열두대에 서면 남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남쪽에서 흘러온 달천과 서쪽에서 온 남한강이 만나 열두대 앞에서 몸을 섞는다. 열두대는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크게 패한 신립(1546~1592)이 몸을 던진 곳으로 알려졌다. 신립은 최후의 싸움을 펼치며 군사를 독려하느라 또는 뜨거워진 활줄을 식히느라 이 벼랑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지만 끝내 이곳에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남한강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히 몸을 뒤척이며 흘러간다.

◇가을 진객, 억새와 수크령

다시 감자꽃 노래비로 돌아간다. 이 노래비는 충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권태응의 동요를 기리는 노래비다. 너래비에는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그의 대표작 감자꽃이 새겨져 있다. 시인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강요된 ‘창씨개명’을 반대하는 은유로 시를 썼다고 한다.

감자꽃 동요를 흥얼거리면서 이정표 따라 계단을 내려서면 남한강변을 만난다. 이곳 드넓은 터에 충주 세계무술공원이 자리했다.드넓은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공원 안에는 세계무술박물관, 어린이놀이시설, 야외공연장, 수석공원, 돌 미로원 등의 시설을 잘 갖추었다. 특히 돌 미로원과 거대한 플라타너스 위에 만든 나무 위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인기기 좋다.

탄금경 비석을 지나면 파크골프장 옆을 지난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열심히 운동 삼아 골프 치는 모습이 건강해 보인다. 파크골프는 1984년 일본 홋가이도에서 시작된 일종의 세미 골프다. 나무로 된 채를 이용해 나무로 만든 공을 쳐 잔디 위 홀에 넣는다. 목행교를 건너 다시 자전거길을 한동안 걸으면, 충주자연생태체험관이 나타나면서 걷기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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