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금융당국이 상반기 중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안을 내놓고 이른바 `한국판 노무라`를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힌 가운데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되레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대형 증권사에 기업금융 기능을 강화해 모험자금 공급에 물꼬를 터주겠다는건데 기업금융 분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지난 2013년에 도입한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가 제대로 자리잡는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주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를 전면 개편해 자본시장의 기업금융 기능을 강화하고 초대형 IB를 육성하겠다”며 상반기 중으로 초대형IB 육성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래에셋증권(037620)이 KDB대우증권(006800)을 인수하면서 자기자본 5조8000억원(자사주 포함시 7조8000억원)대의 대형 증권사가 됐고 최근 KB금융(105560)지주가 현대증권(003450)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자기자본 4조원 규모의 3위권 증권사로 거듭났다. 자발적인 인수합병으로 불어난 몸집에 맞는 새로운 혜택이 담긴 제도가 필요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금융위는 자기자본 5조~6조원대 증권사를 대상 초대형 IB와 3조원 이상의 종합금융투자사업자, 그 이하는 중소기업특화 IB로 분류해 각각의 차별성을 키운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작 증권사들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3년 전 애써 증자까지 하면서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지위를 얻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기업 신용공여규모는 지난해 6월 기준 2조7000억원으로 자기자본(18조3000억원)대비 약 15%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0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놨지만 현재 실행되고 있는 건 거의 없다. 기업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까지 확대하는 방안은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올해 1분기까지 추진 예정이던 지급보증 규제 합리화와 별도 영업용 순자본비율(NCR) 체계 마련 등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에 또 다른 기준과 그에 맞는 혜택을 주는건 결코 달갑지 않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게다가 금융당국은 초대형 IB의 기업금융 기능을 강화해 모험자본 공급기능을 확충한다는 큰 그림을 갖고 있지만 정작 대형 증권사들은 이같은 사업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금융투자협회가 미래에셋증권으로부터 초대형 IB로서 정부에 원하는 바에 대해 의견을 청취한 결과 “해외 진출시 정책금융기관을 동원해 자금 조달이 보다 용이하게끔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등의 글로벌 사업에 대한 요구사항이 주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대형 증권사들은 정부가 원하는 모험자금 공급보다는 해외 진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게다가 이미 여러 증권사들이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되기 위해 증자를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해 주주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또다른 기준이 나온다해도 썩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국과 업계가 긴밀한 의사소통을 통해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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