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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피플]②비참한 말로 보여준 카다피와 벤 알리

김기훈 기자I 2012.06.07 09:35:00

카다피, 42년 독재후 비참한 말로
벤 알리, 사우디 망명 후 병원 신세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6월 07일자 22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중동의 미친개`로 불리며 42년간 리비아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한 무아마르 카다피의 말로는 그야말로 비참했다. 마지막 순간 "쏘지마 쏘지마"라며 목숨을 구걸하던 카다피의 모습에 리비아인 대다수는 만감이 교차했다.

▲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1942년 베두인족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난 카다피는 일찍이 10대 때부터 아랍 민족주의자였던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을 동경했다. 그는 육군 대위로 재직하던 1969년 나세르를 모방해 자유장교단을 구성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리비아 혁명평의회 의장과 국가원수, 군사령관에 올라 독재왕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카다피의 나이는 고작 27살이었다.

1977년에는 사회주의와 범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했다. 최악의 독재자로서 카다피의 야욕이 드러난 것은 1980년대부터다. 그는 의회 제도와 헌법을 폐기하는 한편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리는 등 폭군의 면모를 보였다.

이와 함께 독재 체제를 비난하는 서방과의 갈등도 본격화됐다. 각종 테러에 개입하는 한편 반(反) 미국 무장단체를 물밑에서 지원했다. 이에 서방의 제재가 가해지자 카다피는 `밀고당기기` 전략을 사용했다. 대량살상무기 자진 폐기 선언 등으로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가 하면 뒤에선 또 다른 테러를 조종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카다피 시대에도 끝은 존재했다. 아랍의 봄바람은 리비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고, 작년 2월 리비아에서 혁명이 시작된 지 딱 248일 만에 그는 고향 시르테에서 시민군에 잡혀 초라한 죽음을 맞았다.
▲ 사우디아라비아로 도피 후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지네 알 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


아랍 독재자 중 가장 먼저 권좌에서 쫓겨난 지네 알 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목숨은 부지하고 있지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카다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벤 알리 역시 23년간 대통령 자리를 독식하며 호의호식을 누려왔었다. 그러던 그는 2011년 초 아랍 민주화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한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으로 자국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로 도피, 현재까지 모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랜 망명 생활로 건강이 악화된 그는 최근 사우디의 한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튀니지 검찰은 2010년 12월 튀니지 남부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 당시 군인들에게 시위대를 향한 발포 명령을 내린 혐의로 벤 알리에 사형을 선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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