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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태호 임명규 기자] 지난 2008년 5월. 유진그룹 재무담당 사장은 등골이 서늘했다. 한국기업평가가 그룹 주력 계열사 세곳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떨어뜨렸다는 긴급 보고를 접한 직후다.
당시 유진기업, 고려시멘트, 기초소재 3사의 신용등급은 BBB-였다. 일반적으로 등급전망은 1~2년 내 등급변동을 예고하는데, 전망이 부정적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해당 채권이 조만간 모두 `정크물(투기등급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열흘 뒤 유진그룹은 서둘러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례적으로 전략담당과 재무담당 사장이 함께 마이크를 잡았다. 그들은 연내 유휴자산 매각을 통해 3000억원을 확보하고, 주력 3사를 합병하겠다는 희망적인 자구책을 쏟아냈다.
이후 2년여 동안 유진그룹은 자산을 팔아 빚을 갚는 일을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전략담당과 재무담당 사장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는 내홍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한기평의 평가는 냉정했다. 올 7월을 포함해 두차례의 정기평가를 실시했지만, BBB- 등급에 붙은 `부정적` 꼬리표는 결국 떼어지지 않았다.
◇ 시장 기대 못 미친 자구계획
유진기업(023410) 입장에선 뼈아픈 2년이었다. 금융위기가 전국 부동산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자산매각은 멈출 수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알짜 영업자산까지 내다 팔아봐야 실망스러운 현금만 찔끔찔끔 손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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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매각 계획은 연거푸 지연됐다. 2008년 매각대상에 포함됐던 유진투자증권 지분(8.6%, 500억원) 매각은 2009년 1월에 성사됐고, 고려시멘트의 광주사옥(130억원)은 2009년 10월에서야 ㈜교원에 매각됐다. 불안해진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 압박은 알짜 영업용자산 매각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유진기업은 지난해 3월10일 부천 아스콘 사업장을 200억원에 매각했고, 한주 뒤에는 기초소재가 갖고 있던 인천 시멘트공장을 쌍용양회에 700억원을 받고 팔았다.
차입금 감소와 함께 자본 확충 작업도 진행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상환전환우선주 124만주를 주당 3619원에 발행해 450억원의 현금을 마련했다. 이렇게 2009년에 확보한 유동성은 약 2300억원으로 2008년의 세배로 불어났다. 꾸준한 개선 노력은 긍정적인 평가를 얻기도 했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재구무조개선 약정에 따라 자구방안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고, 감독당국도 약정대로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한국 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 직전인 2009년 부채비율은 179.3%로 전년비 90.5%포인트나 줄어들었지만 총차입금의존도는 47.2%로 10.8%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운전자본투자부담으로 447억원의 순영업현금흐름(NCF) 적자를 낸 탓이다. 자산을 팔아서 빚만 갚는게 아니라 영업적자를 메우는 데도 써야 했던 것이다. 올 상반기 부채부담은 오히려 올라갔다. K-IFRS를 적용한 부채비율은 212.5%로 2009년말 197.6%에서 늘었다. 이에 한 회사채시장 전문가는 "자산매각 규모와 속도 모두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 실망스러운 합병 시너지 효과
지난 2008년 8월 유진기업은 3사 합병을 실시했지만, 기대만큼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합병 직후인 2008년 영업이익은 86억원으로 전년대비 흑자 전환하며 일시적인 상승 무드를 탔지만 지난해에는 3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올 상반기에는 281억원(개별기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레미콘 업황 반등 효과도 있었지만, 이보다는 K-IFRS 도입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IFRS는 기존 기업회계기준(K-GAAP)과 달리 영업이익에 기타수익과 기타비용을 가감한다. 유진기업의 상반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실적을 K-GAAP에서 IFRS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171억원의 영업이익 상승 효과가 나타났다.
수익성이 뛰어난 부천 아스콘 공장과 인천 시멘트 공장 매각도 실적 저하를 부채질했다. 레미콘과 시멘트 등 제조부문의 영업이익률은 2008년 2.1%에서 지난해 0.8%로 감소했다. EBITDA 마진은 2008년 3사 합병효과로 3.7%까지 상승했다가 2009년 2.1%, 올해 들어서는 1% 미만을 기록하기도 했다.
합병 직후 본격화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업계 불황은 시너지 효과를 반감시키는 악재(惡災)로 작용했다. 합병으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유진기업이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건설경기 회복이 급선무지만, 여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레미콘·시멘트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도 필요한 시점이다.
회사채 시장 관계자는 "수익성 저하로 현금창출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유진기업이 유가증권이나 유휴자산 매각을 통해 재무레버리지를 줄이지 못한다면 채무상환능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며 "사업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내실을 정비하는 사업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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