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영리법인화 또다시 미제로?`

이숙현 기자I 2009.04.03 08:15:00

재정부-복지부 건건마다 이견 첨예
칼자루 쥔 한나라당도“아직은…”

[이데일리 이숙현기자] 탄력을 받는 듯 하던 의료 영리법인화 등 의료산업 규제 완화 문제가 다시 장기전으로 돌아설 전망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공개 발언만 봐도 합의에 이르기가 쉽지 않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게다가 법안 통과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여당도 `단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의료부문 선진화 방안은 또다시 미제로 남겨질 가능성 마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빠르면 이달 중순께 의료, 교육 등 규제완화 방안을 담은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전재희 장관은 공개석상에서 재정부 입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특히 핵심적인 의료 영리법인화를 비롯해 일반의약품(OTC)의 약국 외 판매 등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 장관은 지난 1일 "현재 일반의약품 약국 판매가 국민에게 크게 불편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금은 슈퍼마켓보다 약국이 많고 약품이 나갈 수 있는 종류도 크게 제한적이고, 당번약국제도 지정돼 있어 OTC의 약국 외 판매가 실익이 없는 것으로 본다"고 재정부 입장에 반기를 들었다.

전 장관은 이어 OTC의 약국 외 판매 허용이 제약업체들의 매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재정부측 주장에 대해 "반창고, 파스 몇 개 더 판다고 매상이 얼마나 올라가겠느냐"며 "(OTC 약국 외 판매 허용은) 현재로서는 중요한 과제는 아닌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같은 발언은 "일반의약품을 편의점 등에서 팔 수 있게 되면 생산업체 매출이 늘 것이고 판매를 하는 곳도 매출이 늘 것"이라며 "기회비용도 줄일 수 있어 내수에도 좋다. 손해 보는 곳은 독점 판매하는 곳만 있다"고 언급한 윤증현 장관의 발언과 정면 배치된다.

전 장관은 또 지난달 9일 “영리의료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방안은 시범사업을 벌인 뒤 여러 가지 문제를 감안해 검토해야 한다”며 “제주특별자치도나 경제자유구역에서 진행한 뒤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전면적 영리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는 재정부 입장과 또다시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입장 표명이다. 이해집단들은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나 노동계 등의 강한 반발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집권당으로서 고민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 제5정책조정위원장인 안홍준 의원(국회 보건복지가족부위원회 간사)은 “영리법인화를 잘못하면 의료 상품화, 의료 민영화라는 식의 왜곡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칫하다간 대규모 반대 시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며, 결과적으로 전 장관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양상이다.

OTC 판매에 대해서는 “약사들의 특권이 있는 영역이라는 문제와 재정부가 말하는 국민들의 편의성이라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원론적으로 소화제, 박카스 등을 편의점에서 팔면 좋겠지만, 의약품 오남용 문제는 물론 약사들 고유영역으로 있던 부분을 바꿀 수 있는 압도적인 명분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특히 “이 부분(OTC)은 당 정책위 내에서 어느 정도 결론이 난 것”이라고 말해 부처간 극적인(?) 합의에 이르더라도 국회에서 거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 재정부는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대외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통한 내수 진작과 일자리 창출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해 넘어야 할 핵심 과제로 의료와 교육 규제 완화를 꼽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1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의료산업 규제완화가 단시간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내수 진작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는 자세로 관계부처와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의료 산업내 이해당사자들의 특권과 독점의 문제는 물론 의료를 산업으로 볼 것인가, 복지 문제로 접근할 것인가 하는 철학과 이념 문제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어 이를 둘러싼 부처간 및 국회내 논쟁이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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