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그해 오늘] 대낮 마트서 여성만 노렸다…시신 불태운 악마의 '살생부'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김주환 기자I 2026.09.09 00:00:03

Google 검색에서 이데일리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대형마트서 30대 여성 납치·살해
접촉사고 벌금 처분에 앙심…'살인 미끼' 노려
체포 당시 '28명 살생부' 발견…무기징역 확정

[이데일리 김주환 기자] 11년 전 오늘, 충남 아산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평범한 일상이 참극으로 변했다. 장을 보고 차에 오르던 30대 여성이 흉기를 든 괴한에게 납치된 뒤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의 차량 트렁크에 시신을 유기한 뒤 불을 지르고 달아난 범인은 전과 22범의 김일곤(당시 48세)이었다.

김일곤은 검거 직후
김일곤은 검거 직후 "난 잘못한 게 없다. 더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지=유튜브 '달리' 갈무리)
비극의 발단은 범행 넉 달 전 도로 위에서 벌어진 사소한 시비였다. 2015년 5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오토바이를 몰던 김일곤은 20대 남성 A씨와 접촉사고 문제로 다퉜고 몸싸움 끝에 폭행 혐의로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 처분을 받았다.

벌금 처분에 앙심을 품은 김일곤은 A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건장한 20대 남성을 혼자 제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자 기괴한 계획을 세웠다. 무고한 여성을 납치해 차를 몰게 한 뒤, 길을 묻는 척 A씨에게 접근시켜 경계심을 풀겠다는 계산이었다. 복수극에 쓸 ‘미끼’와 ‘범행용 차량’을 동시에 노린 왜곡된 범행 계획이었다.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김일곤은 그해 9월 9일 오후 2시께 충남 아산의 한 대형마트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장을 보고 차에 타려던 3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했으나 피해자가 비명을 지르며 차량 문을 걸어 잠그자 첫 번째 납치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하지만 김일곤은 멈추지 않았다. 불과 2시간 뒤 인근의 또 다른 대형마트 주차장으로 이동해 장을 보고 차에 타려던 주모(당시 35세·여)씨를 덮쳤다. 이어 흉기로 주씨를 위협해 뒷좌석에 감금한 뒤, 피해자의 차량을 빼앗아 몰고 현장을 벗어났다.

비극은 강원도 원주 부근 국도에서 벌어졌다. 차 안에 갇혀 있던 주씨가 창문을 두드리며 필사적으로 저항하자 김일곤은 갓길에 차를 멈춰 세운 뒤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했다.

살해 직후 김일곤은 시신을 트렁크에 실은 채 원주와 속초, 수도권 일대를 1000km 넘게 배회했다. 훔친 번호판으로 바꿔 달며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던 그는 이 과정에서 시신의 특정 부위를 훼손하는 엽기적인 범행까지 저질렀다.

이틀 뒤인 9월 11일 오후 2시 35분께 김일곤은 서울 성동구 홍익동의 한 빌라 주차장에 피해자의 차량을 세워둔 뒤 증거 인멸을 위해 트렁크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김일곤의 피해자 납치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캡처 이미지. (이미지=유튜브 '달리' 갈무리)
김일곤의 피해자 납치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캡처 이미지. (이미지=유튜브 '달리' 갈무리)
범행의 실체는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들에 의해 불에 탄 시신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경찰은 차량 정밀 감식을 통해 용의자를 김일곤으로 특정하고 현상금 1000만원을 내걸며 공개수배로 전환했다.

추적을 피하는 수법은 집요했다. 휴대전화와 카드를 버린 채 현금만 사용하며 도보와 대중교통으로 경찰의 추적망을 따돌렸다. 가발과 모자로 위장한 채 도주를 이어가던 김일곤은 9월 17일 동물 안락사 약물을 요구하기 위해 들어간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동물병원에서 시민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병원 안으로 난입한 김일곤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흉기 난동을 벌였다. 그러나 직원들이 진료실 문을 걸어 잠그며 버티자 황급히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어 그를 뒤쫓은 병원 원장과 인근 파출소 경찰관들이 몸싸움을 벌인 끝에 김일곤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체포 당시 김일곤의 주머니에서는 28명의 이름과 직업 등이 적힌 두 장 분량의 메모가 발견됐다. 이른바 ‘살생부’였다. 메모에는 벌금형의 발단이 된 접촉사고 상대방 A씨는 물론, 과거 자신을 조사했던 경찰관과 담당 검사, 판사, 교도관의 이름까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검거 이후 취재진 앞에 선 김일곤에게서 반성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으로 압송되는 도중에도 카메라를 향해 “난 잘못한 게 없다. 나는 더 살아야 한다”는 궤변을 쏟아내 거센 공분을 샀다.

신고가 접수된 동물병원 인근에서 경찰에 체포된 김일곤. (이미지=유튜브 '달리' 갈무리)
신고가 접수된 동물병원 인근에서 경찰에 체포된 김일곤. (이미지=유튜브 '달리' 갈무리)
법정에 선 김일곤은 국선 변호인의 접견조차 거부한 채 “차라리 사형을 선고하라”며 소란을 피웠다. 방청석에 앉은 피해자의 유족들은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졌다”며 사형 선고를 눈물로 호소했다.

검찰은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생명을 박탈하기보다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해 평생 참회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판결에 불복한 검찰의 항소로 이어진 2심에서도 재판부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후 양측 모두 상고하지 않으면서 김일곤에게는 무기징역형이 최종 확정됐다.

이 사건은 일상적 공간이어야 할 대형마트 주차장의 치명적인 치안 공백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여성의 이용 편의를 위해 도입됐으나 관리 부실로 오히려 범죄의 표적이 됐던 ‘여성우선주차구역’의 역설에 큰 경종을 울렸다.

참극이 남긴 대가는 컸다. 사건 이후 주차장 내 비상벨 의무화와 고화질 폐쇄회로(CC)TV 대거 확충 등 뒤늦은 안전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평범해야 할 일상의 공간을 공포로 물들인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안일했던 생활 방범망을 뿌리부터 뒤흔든 뼈아픈 경종이 됐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