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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지난 3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중앙지법 재판부의 구속취소 결정에 이어 5월 이 대통령 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 이후 사법부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국회 법사위가 내란특별재판부 신설, 법관평가제 도입 등 사법권 독립과 배치되는 법안 심사를 이어가는 가운데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 또는 탄핵 가능성을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
입법·행정과 함께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토대지만 헌정사에서 정부와 국회의 사법부 공격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막강한 권력의 독주에 대법원장이 중도 퇴진한 전례가 있지만 정치권 퇴진 압박에 대법원장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77년 헌정사, 15명 대법원장 중 4명 임기 중 낙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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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5명 중 현직인 조 대법원장을 제외하고 4명의 전직 대법원장은 정치적 격변이나 파문에 휘말려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2대 조용순(1958∼1960) 대법원장은 이승만 정권 시절 임명됐지만 5·16 군사 쿠데타로 물러났다. 박정희 정권 시절 임명된 7대 이영섭(1979∼1981) 대법원장은 12·12 군사 쿠데타와 신군부 집권 이후 스스로 사퇴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임명된 9대 김용철(1986∼1988) 대법원장은 6월 항쟁 이후 정치권력에 종속된 사법부에 대한 개혁과 반성을 요구하는 소장 판사들의 서명으로 전개된 ‘2차 사법 파동’으로 물러났다. 11대 김덕주(1990∼1993) 대법원장은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 직후 공직자 재산 공개 당시 변호사 시절 투기 대상 지역에 9억원 어치 부동산을 사들인 사실이 공개되면서 법복을 벗었다.
8대 유태흥 대법원장은 임기를 채웠지만 재임 중 법관 인사 관련 파문에 휘말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는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사법 암흑기’로 불린 전두환 정권 시절 사법부 수장을 지낸 점 때문에 후배 판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고 퇴임 후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다 2005년 86세의 나이에 마포대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15대 양승태 대법원장 역시 임기는 마쳤지만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부적절하게 유착해 재판에 개입하고, 법원 내부 문건을 청와대에 넘긴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 퇴임 직후 구속됐다. 헌정 사상 검찰에 구속된 첫 대법원장으로 사법부로서는 ‘치욕의 날’을 맞은 것이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1월 1심에서 전부 무죄를 받았고, 오는 11월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임기 차이로 반복되는 정권과 ‘불편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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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같은 권한은 대통령의 임명과 국회 인준을 거쳐야 행사할 수 있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다. 대법원장 임기는 6년으로 대통령(5년)이나 국회의원(4년)보다 길다. 대법원장 임기(6년)와 대통령 임기(5년)가 엇박자가 나는 탓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대법원장과의 ‘불편한 동거’가 반복됐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임명된 14대 이용훈 대법원장은 임기 후반 이명박 정부 및 여당과 갈등을 겪었다. 이 대법원장 시절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이 주요 자리에 배치되면서 갈등이 심화했다.
16대 김명수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지만 임기 후반 2년을 윤석열 정부와 함께 보내야 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김 전 대법원장이 역량 있는 고법 부장판사들을 법원장으로 보내지 않고, 각급 법원장을 소속 법원 판사들의 ‘인기투표’로 사실상 뽑고 법원장 선임 유력한 후보군인 각 법원 수석부장판사 자리에 ‘측근’을 보임했다며 압박을 이어갔다.
17대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윤 전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정년 70세’ 적용을 받아 오는 2027년 6월까지 이재명 정부와 함께 해야 한다. 민주당은 최근 조 대법원장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과 만나 이 대통령 상고심 사건을 논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조 대법원장은 “한 전 총리와는 물론이고 외부의 누구와도 논의한 바가 전혀 없으며 거론된 나머지 사람들과도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같은 대화 또는 만남을 가진 적이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며 반박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의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당 일부 강성 의원들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준비했다며 압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정치권이 노골적으로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자 삼권분립의 근간이 흔드는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부장판사는 “역대 대법원장들이 정치적 격변기에 중도 퇴진한 사례는 있었지만 정치권의 압박에 스스로 물러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만약 조 대법원장이 사퇴한다면 이는 사법부가 정치권에 굴복했다는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