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과 회계·컨설팅 업체들이 최근 펼친 ‘2024년 전망 보고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장이다. 올해 자본시장에서 제약·바이오만큼 활약하는 분야를 찾기는 어렵다는 게 골자다. 아직 경제적 불확실성이 남아 있지만, 주요 제약사들이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 만료 및 고령화 시대 진입에 따른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M&A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자취를 감췄던 초대형 빅딜이 이르면 올해 이 분야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자본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고금리와 전쟁을 비롯한 대내외적 불확실성, 밸류에이션 등 뭐 하나 제대로 완화된 것이 없는 와중 ‘갑자기 웬 제약·바이오’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지만,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이러한 전망에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코로나19 이후로 지지부진했던 제약·바이오 산업에서는 지난해 ‘확실한 기업이라면 높은 밸류를 쳐서라도 인수하자’는 움직임이 속속 포착됐다. 실제 런던증권거래소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거래의 밸류는 2022년 대비 각각 38%와 45% 증가했다. 예컨대 제약 부문에선 지난해 679건의 주요 거래에 1355억달러(약 176조원)가, 바이오 부문에선 1078개 딜에 1222억달러(약 159조원)가 모였다. 지난 2022년 778건의 제약 관련 거래에 985억달러(약 128조원), 1088개 바이오 딜에 842억달러(약 109조원)가 모인 것과 견주면 밸류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이런 움직임이 잇따른 주요 원인으로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 만료’가 꼽힌다. 미국 컨설팅업체 ZS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오는 2030년까지 만료되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의약품 특허는 190건으로, 이들 중 주요 제약사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은 69건에 달한다. 제약사에 있어 특허 만료는 독점권 상실로 통한다. 해당 의약품을 독점 판매해오며 매출을 끌어올린 제약사에게는 수익이 곤두박질칠 위기에 놓인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차세대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한 기업 중 당장의 수익지표에 도움이 될 곳을 인수해 대응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특히 정밀의료 분야에서의 M&A 수요가 컸고, 앞으로도 폭발적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리링크파트너스에 따르면 지난해 제약·바이오 M&A에서는 종양학과 희귀질환, 면역학 순으로 거래 비중이 가장 많았다. 예컨대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는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 전문 기업 시애틀제네틱스(시젠)를 인수했고, 미국 바이오젠은 희귀질환 전문 제약사 리아타파마슈티컬스를, 글로벌 제약사 머크는 자가면역 치료제 개발사 프로메테우스를 인수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PwC는 관련 보고서를 통해 “특허 만료에 따라 제약사들은 새로운 수익 창출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제약사들의 매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상업화 단계의 기업들을 물색하고 나설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제약·바이오 딜의 밸류가 설령 더 높아지더라도 M&A 활동만큼은 꾸준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만큼, 제약·바이오는 꾸준한 투자 섹터로 자리 잡은 것이 현실”이라며 “밸류가 치솟더라도 성장성과 트렌드가 뚜렷하기 때문에 거래가 줄어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술력이 뛰어난데 저평가된 바이오 기업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아직도 여전하다”며 “오히려 가치 상승으로 ‘확실한 기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