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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씨는 ‘정당방위’를 들어 항소했다. 형법은 ‘방어 행위가 정도를 초과하더라도 야간이나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경악·흥분·당황한 상태였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를 요건으로 정당방위를 인정한다.
2심은 1989년 1월20일 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가정주부로서 정조와 신체 안전을 지키고자 엉겁결에 추행자 혀를 물어 뜯었다면, 자신의 성적순결 및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고자 한 행위라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후 유사 사건에서 여성의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판례로 작용했다.
이른바 ‘변월수 사건’은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담겨 있다.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 남성은 변씨의 가정불화가 빚은 범죄라고 주장했다. 범행 당일 변씨가 동서와 술을 마시고 다툰 게 발단이라고 했다. 자신들을 동서가 폭행을 사주한 이들로 오해하고 과하게 저항했다는 것이다. 법원이 인정하지는 않은 정황이지만, 동서 간에 갈등은 사건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부분이다.
성폭력 사건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법정에 선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당연히 수사 과정에서 남성 두 명도 강제추행과 강간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어갔는데, 변씨의 폭행 사건과 연관이 있어서 한 사건으로 묶였다. 이로써 변씨는 자신을 성폭력한 남성 두 명과 함께 재판받았다.
변씨는 무죄 판결을 받고 당시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검사와 가해자 변호사가 법정에서 내가 당시 술을 마신 부분을 추궁하면서 강간당해 마땅한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 태도가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변월수 사건은 1990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로 제작됐다. 영화에서 변씨 역을 맡은 배우 원미경씨는 법정에서 이런 대사를 남겼다. “다시 사건이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여자들한테 말하겠습니다. 반항하는 것은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안 된다고, 재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입니다.”
가해 남성 두 명은 1심에서 징역 단기 2년6월에서 장기 3년이 선고됐다. 형법상 소년범은 형량을 범위를 설정해서 선고한다. 둘은 범행 당시 만 18~19세 대학생이었다. 재판 도중 성인이 된 두 사람은 2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