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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딱딱하게 돌처럼 굳는 섬유화가 진행될수록 간암 발생률이 높아진다. 세브란스병원 간암클리닉에선 지난 2011년 간 섬유화가 간암 위험을 6배가량 높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간암은 간 섬유화에서 시작된다. 간 섬유화를 조기 발견하면 간암 생존율도 높아진다. 간암 수술을 받은 환자는 간 섬유화 검사를 통해 예후를 살핀다. 즉, 간암에서 간 섬유화는 대장암에서의 용종처럼 ‘조기경보’ 역할을 한다.
문제는 간 섬유화 검사가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조직검사 외엔 마땅한 간 섬유화 검사법이 없다. 조직검사는 필연적으로 간 조직 일부를 떼내야한다. 이 때문에 치료경과를 살펴보기 위한 반복검사도 불가능하다. 조직검사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환자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업계에선 오랜 기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혈액검사와 같은 비침습적 검사법을 연구해왔으나, 의료현장에 적용할만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간암 환자 상당수가 예나 지금이나 골든타임이 한참 지난 3~4기에 암을 발견하는 이유다.
이데일리는 지난 2일 김태완 멜라니스 이사회 의장 겸 미국 컬럼비아대 의과대학 교수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인공 멜라닌 조영제에 대한 기술적 특장점과 상업적 가치에 대해 살펴봤다. 멜라니스는 지난 2016년 김 의장과 이진규 LG화학 부사장이 서울대 화학과 교수시절 공동창업한 바이오벤처다. 이 부사장은 김 교수에게 멜라닌 기반 신물질을 처음 소개했다. 비엘팜텍(065170)은 지난 5월 멜라니스 지분 34.9%를 83억원에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 기존 간 조영제 한계 뚜렷
현재 사용되는 간 조영제는 한계가 뚜렷하다. 김태완 교수는 “기존 간 MRI 조영제는 간 섬유화까지 살펴볼 수 없다”면서 “더욱이 상당한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어 반복 검사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대표 간 MRI 조영제는 바이엘의 프리모비스트다. 이 제품은 뚜렷한 경쟁자 없이 글로벌 2800억원 규모의 간조영제 시장을 독차지하고 있다. 프리모비스트는 높은 위험성과 부작용 우려로 신부전증 환자, 응급환자, 조영제 알레르기 환자 등에겐 쓰지 못한다.
김 교수는 “기존 MRI 조영제 주성분은 가둘리늄”이라며 “가둘리늄은 맹독성 중금속으로,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인체 여타 장기에 흘러들어가면 염증반응, 전신섬유화, 뇌침전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 결과, 가둘리늄 조영제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해 양 끝이 뚫린 선형에서 둥근 고리형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제조법이 변경됐다”면서 “문제는 고리형 조영제는 간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간 조영제는 현재까지도 선형 가둘리늄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역시 선형 가둘리늄에 대한 부작용을 블랙박스를 통해 경고하고 있다. FDA가 십수 년간 가둘리늄 대체재 찾기에 혈안이 돼 있는 이유다.
◇ 인체 멜라닌 모사에서 해법 찾아
이런 상황에서 멜라니스는 인체 멜라닌을 모사해 혁신적인 간 조영제를 개발했다. 이 조영제는 독성은 없고 간암은 물론 간 섬유화까지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다. 간 조영제 시장에 신기원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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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멜라닌은 조영에 필수적인 색소 특성을 지니면서도 인체 무해하다. 하지만 자연 멜라닌은 1g당 150만원으로 비싸다. 뿐만 아니라, 자연 멜라닌은 추출 시 변형되고 크기도 일정치 않아 조영제 원료로 쓸 수 없다. 특히, 자연 멜라닌은 폴리페놀 성분으로 물에 녹지 않아 주사제 개발에 부적합하다. 멜라니스는 자연 멜라닌을 모사해 인공 멜라닌을 제조하기로 결정했다.
인공 멜라닌을 조영제로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김 교수는 “자연 멜라닌의 둥글둥글한 나노입자처럼 인공 멜라닌을 만들었더니 모양이 제각각 이었다”면서 “조영 효과는 뛰어났지만 조영 품질이 일정치 않아 도저히 쓸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모다모다 샴푸로 유명한 이해신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다. 그는 “이해신 교수는 기존 인공 멜라닌이 자기결합으로 입자 크기가 제각각 형성된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면서 “이 교수가 저분자 상태의 인공 멜라닌에 전구체를 붙여 고분자로 만들자,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됐다”고 설명했다. 전구체는 화학 반응에 참여하는 물질을 말한다.
통상 저분자는 흡수율이 높고 고분자는 수분함유량이 많아진다. 인공 멜라닌을 수용성 고분자로 만들자, 입자 크기는 동일해지고 물에 잘 녹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인공 멜라니스 크기를 10나노미터(nm)로 제한해 체내 잔류를 없애고 완전히 배설되도록 했다.
멜라니스는 한발 더 나아가 전구체 하나를 둘러싸고 멜라닌 입자 6개를 붙여, 멜라닌 간 응집현상을 원천봉쇄했다. 인공 멜라닌 구조가 안정되자 대량생산의 길이 열렸다. 6개 입자가 뭉쳐진 ML-101은 간을 정확하게 표적했다. 입자가 너무 작으면 간이 아닌 여타 장기에 조영제가 침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구조체 설계다.
◇ 대량생산 성공...1상 후 기술수출 모색
여러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고 상용화 문턱에 선 인공 멜라닌 간 조영제는 효능 및 안전성 면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과시한다.
김 교수는 “인공 멜라닌 간 조영제는 기존 조영제보다 10배 이상 밝다”며 “또, 성분 자체가 인체 무해하고 몸 밖으로 배출돼 부작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피부에 상처가 나면 조직이 섬유화되면서 피부가 시커멓게 변하지 않냐”면서 “섬유화된 조직에 멜라닌 색소가 달라붙는 특징이 있다. 이런 멜라닌의 특징으로 뛰어난 조영 품질이 나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상업화도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평가다. 멜라니스는 지난 2년간 수차례에 걸쳐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에서 실험실과 동일 품질의 인공 멜라닌 간 조영제를 100ℓ 단위로 대량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ML-101의 임상 1상은 내년 3분기 약 6개월간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수출을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김 의장은 “앞으로 조영제와 더불어 주 연구분야인 섬유화 질환 혁신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며 “컬럼비아대 교수로 재직하며 쌓은 다국적 제약사와의 협업 경험을 살려 파이프라인 개발을 성공으로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편,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글로벌 간 조영제 시장은 연평균 8.14%씩 성장해 오는 2026년 4500억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