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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디스플레이에 다니는 김은태(31·가명)씨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정시에 퇴근한다. 처음과 달리 요즘엔 직원들이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며“정시 퇴근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해온 300인 이상 사업장(3526개소)에서 주 52시간제가 안착했다고 평가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하는 방식 개선방안 마련’ 보고서를 보면, 조사를 진행한 300인 이상 사업장(83개 기업) 중 대기업에서 주 52시간제 도입이 안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시 퇴근이 쉬워졌다”는 응답은 기업 규모가 크고, 매출규모가 큰 기업에 집중됐다.
‘정시 퇴근 분위기가 정착됐다’고 응답한 비율(중복 투표가능)은 △대기업 75% △중견기업 38.9% △중소기업 21.7%로 나타났다.
정시 퇴근 분위기 정착에 대한 응답을 매출 규모로 나누면 △1100억 이상 구간에선 63.6% △350억 이상~1100억원 미만 33.3% △120억 이상~350억원 미만 21.4% △120억원 미만 구간 0%로 나타났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주 52시간 초과 노동자가 있는 기업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고 대다수가 7월 이후 주 52시간제를 준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 등 전반적인 안착 분위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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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의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1일부터 52시간제 시행에 들어가는 특례제외업종 중 300인 이상 사업장은 지난 5월 기준으로 1047곳, 노동자는 106만150명이다. 이 가운데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가 있는 기업은 125곳으로 조사됐다.
고용노동부는 국회 공전으로 탄력근로제 연장방안이 표류하자 선택·재량·탄력근로 등 유연근로제 도입을 준비 중인 사업장에 3개월의 계도기간과 적발 시에도 최대 6개월의 시정기간을 부여한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난감해 하는 곳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대학이다 . 통상 대학의 입시 업무는 최소 6개월 이상의 집중 업무를 필요로 한다는 게 대학 측의 설명이다. 탄력근로제가 6개월로 연장되면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지만 지난 2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가 탄력근로제 연장에 합의했음에도 불구, 국회 공전으로 법안이 표류 중이다.
한 대학 총무팀 관계자는 “입학사정관들은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기간에 집중해서 전형별 학생들을 선발하는 작업을 한다”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외에 방법이 없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정규직 입학사정관들은 노동시간이 줄어 임금 보전이 안 된다며 반발해 난감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소재 또다른 사립대 관계자는 “입학 업무가 몰리는 9월과 10월, 12월과 1월에는 현재 직원으로는 주 52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며 “행정 부서에 있는 직원들을 입시 부서에 파견 형식으로 보내 직원별 근무 시간을 맞추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2만7000곳… 5개월 남았지만 52시간제 속수무책
특히 주 52시간제 시행이 5개월여 남은 중소기업에서도 벌써부터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내년 1월부터 52시간제가 적용되는 50~299인 이하 사업장은 2만7000곳에 달한다. 중소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 채용 비용부담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직원들 또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소득보전을 요구할 게 불보듯하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중기중앙회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열악한 중소기업은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300인 이상 기업도 6개월, 추가로 3개월 총 9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한만큼 중소기업에도 상응하는 수준의 계도기간을 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계도기간을 준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임금체계 개편이나 교대제 등 근무형태 개편 등이 수반돼야 주 52시간제가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주 52시간제에 따른 신규 채용 및 인력운용 계획을 수립하고, 낮은 기본급을 야근수당·주말수당 등으로 보전해온 왜곡된 임금체계와 업무량과 무관한 시간채우기식 근무형태 등 근로·임금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소장은 “하청기업에서는 원청업체가 요구한 기한과 물량을 맞추기 위해 연장근로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주 52시간제에 따른 소기업의 어려움도 우려된다”며 “장시간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점이나 관행 등을 전반적으로 바꿔야 52시간제 정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