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인간 트럼프]①‘닥치고 저금리’‥연준 의장도 갈아 치운다

안승찬 기자I 2017.08.07 00:01:34

트럼프, 관례 깨고 연준 의장 교체 가능성 언급
“난 저금리 좋아”..차기 의장, 저금리 기조로 판단할 듯
부의장도 자기 사람 임명..트럼프의 연준 장악 시도

그래픽=이데일리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스로 ‘저금리 인간(a low-interest-rate person)’이라고 부른다. 늘 싼 대출이자를 찾아다니던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가 높은 건 딱 질색이다. 금리가 낮고 시중에 돈이 넘쳐나는 상황을 좋아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저금리 인간’이라는 수식어를 붙어준 사람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를 이끄는 재닛 옐런 의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옐런 의장을 두고 “그는 역사적인 저금리 인간”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옐런 의장을 자신과 같은 ‘저금리 인간’으로 분류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옐런 의장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두 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옐런 의장을 저금리 인간이라고 불렀다.

옐런 의장의 미덕은 그의 태도에 있다. 옐런 의장은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할 때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결정이 연준의 공격적인 행보가 아니라, 마치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수단인 것처럼 행동했다.

또 연준의 정책 방향을 시장에 반복적으로 전달했다. 누구나 기준금리의 방향을 예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상된 악재는 악재가 아니다. 시장은 실제로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져도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갔다.

처음엔 트럼프 대통령이 옐런 의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한 옐런 의장이 민주당에 유리한 금리정책을 편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지금은 평가가 딴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옐런 의장을 좋아한다. 그녀의 처신이 마음에 든다. 아주 일을 잘한다고 생각한다”고 치켜세웠다. 옐런 의장에 대해 “상당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 누가 되든, 연준 의장은 무조건 저금리

역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왼쪽부터 폴 볼커(1979~1987), 앨런 그린스펀(1987~2006), 벤 버냉키(2006~2014), 재닛 옐런(2014~현재) 의장. /CNN머니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옐런 의장을 연임을 결정한 건 아니다. 그는 내심 자신의 측근을 연준 의장으로 보낼 생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차기 연준 의장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콘 위원장을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그에게 대단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콘 위원장은 확실히 차기 연준 의장 후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은 콘 위원장으로 한참 기울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터뷰할 때 콘 위원장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트럼프가 콘 위원장이 차기 연준 의장 후보라고 말하면서 “그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고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콘 위원장은 크게 웃으며 양손으로 귀를 가리는 시늉을 했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콘 위원장은 26년간 골드만삭스에 몸담았던 정통 월스트리트 금융인이다. 상품 채권 주식 트레이더로 경력을 쌓은 뒤 골드만삭스 사장까지 올랐다. 콘 위원장은 현재 트럼프 정부의 최측근 경제참모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융 규제 완화와 저금리 기조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콘 위원장을 연준으로 보내 저금리 기조에 못을 박겠다는 심산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당연히 옐런 의장의 연임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콘 위원장 외에도 “2~3명의 후보가 더 있다”는 말도 했다. 옐런 의장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2월을 언급하며 “아직 결정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교체하면 관례를 깨는 일이다. 최근 40년간 연준 의장이 연임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폴 볼커 의장, 앨런 그린스펀 의장, 벤 버냉키 의장이 정권을 바꿔가며 연임했다. 물론 4년인 연준 의장의 임기는 항상 대통령이 취임한 이듬해에 만료된다. 새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짜진 제도다. 그럼에도 미국의 대통령은 전임자가 임명한 의장을 존중했다. 블룸버그는 “정책의 지속성과 금융 시장 안정을 고려해 상대 정당이 선임한 의장이라도 연임시키는 게 관례”라고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례는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옐런 의장이냐, 콘 위원장이냐 하는 점도 그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준은 하나다. 그의 관심사는 저금리 기조 유지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누가 더 저금리 기조를 잘 유지할 수 있느냐에 철저히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 연준 장악하는 트럼프..‘옐런의 반란’ 주목

미국의 기준금리 추이
연준은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곳이다. 연준을 장악하면 달러를 지배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실현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 장악에 강한 유혹을 느낀다. 연준을 자신의 의도대로 주무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는 이미 곳곳에서 드러난다.

미국 연준에서 금융회사들의 감독권을 가지고 있는 대니얼 터룰로 이사는 지난 4월 돌연 사임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한 그의 임기는 2022년까지다. 터룰로 이사는 2010년 도입된 금융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강력한 금융 규제를 주도한 인물이다. 터룰로 이사의 퇴임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그는 사직서에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그동안 (연준에서) 봉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고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터룰로 이사의 갑작스러운 사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에서 금융 감독을 담당할 새 부의장에 랜들 퀼스를 임명했다. 퀼스는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재무차관을 지냈고, 이후 솔트레이크시티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사이노슈어의 공동경영자로 일했다. 그는 터룰로 이사 때와 달리 은행 규제를 과감하게 줄이고 도드프랭크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연준의 통화운용 역시 재량권을 갖지 말고, 기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WSJ은 터룰로 이사의 사임이 금융 감독권을 퀼스 부의장으로 넘기려는 트럼프 정부의 의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회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들어가는 연준 이사는 총 7명이다. 이중에서 현재 3명이 공석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명한 이사 후보가 있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비준을 받지 못했다. 연준을 장악하려는 트럼프의 시도는 계속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옐런 의장은 연임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는 분위기다. 연임 제안을 받으면 수락할 것이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옐런 의장은 “결정하지 않았다”며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옐런 의장이 자리에 미련이 없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어쨌든 옐런 의장의 임기가 내년 2월까지 남았다. 자신의 임기 내에 필요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옐런의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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