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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 이세돌의 패배는 인간의 패배인가

김민구 기자I 2016.03.14 03:01:01
[김성수 문화평론가] “알파고는 바둑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면서 5대 0의 완승을 예언했던 이세돌은 인공지능(AI) 컴퓨터에게 연달아 세판을 지고 말았다. 첫 대국이야 탐색전을 펼치느라 여러 실험을 했다 하지만 신중하기 짝이 없었던 두 번째 대국에서의 불계패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한국기원에서는 이세돌의 기보는 모두 노출되어 있는 반면 알파고는 기보 하나만 노출한 상태에서 대결을 펼쳐 불공정한 게임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오로지 혼자만 싸우는 이세돌과는 달리 알파고는 인터넷에 연결돼 컴퓨터 자원을 무한정 사용하기에 사실상 무제한의 훈수꾼을 두고 바둑을 두는 것이라며 불공정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무리 트집을 잡더라도 이세돌의 불계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AI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이미 1995년에 ‘노동의 종말’이란 책을 통해 알파고와 같은 AI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 넘을 것이라 예언한 바 있다. 리프킨 통찰에 따르면 이미 로봇이 대체하고 있는 단순 노동작업은 물론 인간이 하기 힘든 위험한 작업을 비롯해 자산관리나 법률 자문, 정교한 수술과 같은 전문 영역에서도 AI를 탑재한 로봇들이 인간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생산성은 높아지고 이윤은 더 발생할지 모르지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고 이 악순환은 로봇에 대한 인간의 반란으로 이어져 영화 ‘터미네이터’가 그려낸 지옥과 같은 상황으로 치달아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리프킨은 책의 말미에 중요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시장경제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친 ‘후기 시장 시대’(Post-Market Era)를 열어젖힐 수만 있다면 인류는 인간들만이 할 수 있는 노동을 넘어서 놀라운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핵심 아이디어는 기술 발전이 가져올 이익을 피해자들과 공정하게 배분하자는 것이다. 이는 곧 공동체 패러다임이며 이미 많은 국가에서 거버넌스와 함께 중요하게 부상하는 이른바 ‘제3부문’(the Third Sector)을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현실화 할 수 있다. 즉 공동체를 유지하고 재건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자발적인 조직과 노동을 장려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자원 봉사에 대한 그림자 임금’이나 ‘공동체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임금’이라는 개념으로 불리던 전혀 새로운 형태의 소득은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는 노력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이를 단순히 복지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요컨대 제3부문을 강화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AI 로봇 때문에 촉발되는 후기 시장 시대엔 정부도, 일반 기업도, 노동하는 인간도 모두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생산성에만 기초하지 않은 사회적 경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논쟁을 넘어서 변증법적 통합을 이룩해 내고 있다. 이제는 사전적 의미의 노동을 로봇에게 넘겨주고 사랑과 배려, 진정한 연대와 봉사 같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스스로에게 봉사해 소득까지 올리는 새로운 사회로의 대전환을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세돌의 패배는 인간 대표의 패배가 아니라 인간이 이룩해 낼 새로운 진보를 확인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그 짐을 무거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 와중에 우리는 인간정신보다는 자본 이해를 극대화하는 방법만 고민하고 있다. 이는 AI가 주는 경고를 무시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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