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은 여전하고, 관련 법안의 입법이 내년에 줄줄이 예고돼 있어서다. 순환출자 금지(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감사위원의 분리 선출 및 의결권 3% 제한(상법)등이 대표적이다.
재계는 “순환출자금지법 등 경제민주화 법안은 신규 고용이나 투자를 크게 위축시키고, 경영권에 위협을 줄 수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순환출자금지, 상법개정안 국회 문턱 넘을까
순환출자 금지 법안에 대해선 여야 입장이 갈려있다. 야당은 신규 순환출자뿐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까지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당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며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산 2조 원 이상인 대기업이 이사회의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의 지분 중 3%만 의결권으로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 역시 거센 논란에 휩싸여 있다.
재계는 지분율 3% 미만인 주주나 외국계 투기 자본이 연합해 대주주에 반대되는 감사위원을 선임하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고, 이사 선임 과정에 일반주주들의 의결권을 강화한 집중투표제 조항 역시 기업의 경영권을 농락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반면 경제개혁연대 등은 대주주의 불법 행위를 막는다는 법안의 취지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배주주가 원치 않는 단 한 사람도 이사회에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인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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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를 금지하고,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대기업 그룹의 오너십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0.52% 지분으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2.08% 지분으로 전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오너십이 반드시 나쁜 것인가는 따져볼 문제다. 삼성전자(005930)는 물론 현대차(005380), SK(003600) 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한국 특유의 무한책임 오너십이 경제성장에 이바지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오너가 있는 회사는 신속하면서도 과감한 투자결정이 가능한 데다 단기 실적에 ‘올인’하는 전문경영인과 달리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할 수 있다.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한 포스코(005490)나 KT(030200) 등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배구조 리스크에 시달리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KT 관계자는 “통신산업의 특성상 중·장기 전략과 과감한 투자가 중요한데, 정권에 휘둘리고 매번 실적 평가를 받아야 하는 KT의 투명한 지배구조가 LG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발전하는 LG유플러스에 비해 불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기동력 있는 의사결정 등 대기업 오너십 구조에 대한 사전적 통제가 아니라 경영권을 남용했을 때 강하게 통제하는 사후 통제 강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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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그룹을 규제하려고 만들어진 법안이 성급하게 추진되면 되레 중소·중견 기업에 피해가 돌아가는 상황도 발생한다.
계열사 매출 중 내부거래가 30%를 초과하고 지배주주(친·인척) 지분이 3% 이상이면 증여세를 부과하는 게 대표적이다. 국세청이 7월 초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신고 대상자로 추정되는 약 1만명에게 신고 안내문을 발송했는데, 1만 명 중 30대 그룹 총수 일가는 70여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99%가 중소·중견기업이었다.
대기업의 완성품 직수출은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 반면 중소·중견기업의 대기업에 대한 중간부품 간접 수출(내국신용장)은 과세 대상인 이유에서다.
결국 국회는 일감 몰아주기 증여의제 과세 대상에서 수출 중소·중견기업을 일괄적으로 제외하기로 하는 내용의 상속세·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 오너십의 폐해뿐 아니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부분도 함께 논의된 속에서 경제민주화 입법도 차분히 다뤄지는 균형감각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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