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아니, 말이야”로 시작된 장 이사의 투덜거림이 끝날 줄을 몰랐다. 어제 저녁 서재에 들어간 마나님을 찾는다고 벌컥 문을 열었다가 한 소리 들었단다.
“노크도 못하냐는 거야, 나한테! 세상에 내 서재에 들어간 내 마누라 찾는데 내가 노크를 해야 하냐고…” 장 이사는 아직까지 씩씩 콧김을 냈다.
“아니, 뭘 하고 있었는데 노크를 하라고 했을까?” 퍼팅을 하기 위해 그린 위에 옹기종기 모여 선 동반자들이 킥킥, 히히 짓궂게 장 이사를 놀려댔다. 시작은 자기가 했어도 동반자들이 자기 아내를 빗대 놀리는 것은 싫은 장 이사. 뭐라 답하려다가 곧 자세를 고쳐 잡고 퍼팅을 한다.
그런데 오늘 장 이사 퍼팅이 계속 홀을 훑고 지나간다. 홀을 향해 똑바로 가는 듯 하다가는 살짝 휘곤 하면서 내내 장 이사 약을 올리는 것이다. 동반자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제대로 찾아가지를 못하니까 사모님이 노크를 하라는 거 아니냐”부터 시작해 온갖 농담이 난무했다.
평소 점잖기로 2등 하라면 서러워할 최 전무도 한 마디 거든다. “어이 친구, 거 마나님이 노크하란다고 주먹으로 ‘쾅’하고 한번 치면 마나님이 좋아하겠나. 깜짝 놀라서 들어오라고 할 마음이 싹 달아나지… 옛날 연애시절 한번 생각해봐. 살살 꼬셔가면서 엉덩이 툭툭 때려보던 때 말이야. 그렇게 해야지 퍼팅을…”
말이야 맞는 말이다. 장 이사는 아까부터 퍼팅할 때마다 백스윙 갔다가 임팩트하고는 곧 오른손을 놓아버렸다. 일단 때렸으니 됐다, 뭐 그런 식이었다. 노크 하라니까 한 번 쾅 두드리면 됐다 그런 마음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 소리에 안에 있는 마나님이 화들짝 놀라든지 말든지, 그 힘에 문짝이 밀려 확 열리든지 말든지 뒷 일은 나 모르겠다 그런 심산이었다. 그러니 퍼터에 맞은 볼도 심통 난 마나님과 다를 바 없이 장 이사 마음과는 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밖에.
놀리듯이 하는 최 전무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싶으니 장 이사는 더 부아가 치민다. “아니, 이 할망구 때문에 내가 별 훈수를 다 듣네.”
평소에도 같은 실수 때문에 퍼팅을 놓치곤 했고, 최 전무가 비슷하게 조언을 했었는데도 그 순간 장 이사는 엊저녁 일 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똑 같은 실수가 거듭될 밖에.
최 전무가 보다 못해 또 한마디 한다. “숫자를 세게. 백 스윙 갈 때 하나, 둘, 다운스윙하면서 셋, 넷. 숫자를 다 셀 때까지 손도 놓지 말고 머리도 들지 말고, 몸도 돌리지 말아보란 말이네.”
그리고 또 한 마디. “거, 참 손 장난 좀 그만 치게.”
“무슨 손 장난?” 장 이사가 당황한다.
놀리는데 재미가 들린 최 전무는 여유만만이다. “그렇게 혼자서 손을 돌려 대니까 공이 이리저리 피해 다니지..”
“아, 글쎄 뭔 말이냐고?” 장 이사는 폭발할 지경이다.
그만하면 됐다 싶은지 최 전무가 정색을 하고 말한다. “모든 퍼팅은 직선일세. 라인이 휘어 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스트로크는 직선 스트로크 뿐이지. 골퍼가 해야 하는 것은 꺾어 돌아가는 지점을 향해 볼을 똑바로 보내는 거라는 말이야. 그 다음은 퍼팅 경사면 생긴 대로 볼이 휘어가는 거고. 그런데 자네는 공을 휘어 보내려고 손목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하잖아. 그냥 목표한 지점을 향해 볼을 똑바로 보내는데 집중하란 말이야.”
모든 퍼팅은 직선이다.
그건 장 이사도 아는 말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최 전무 말대로 내내 라인따라 손목을 돌리면서 퍼팅을 했던 것 같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오늘은 마나님 때문이라는 생각에 또 열이 오르려고 한다.
그 때 최 전무의 마지막 한 마디.
“마나님 덕에 귀중한 퍼팅 조언 들었으니 오늘 집에 가면 마나님 한번 업어 드리게. 노크도 부드럽게 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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