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오늘인 1999년 2월 13일.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에서 당시 송탄여자고등학교 3학년이던 송혜희 양이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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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탔던 송양은 이날 오후 10시께 집 부근인 평택 하리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목격된 것이 송양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송양이 내린 버스정류장은 집에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집까지는 10분 남짓 걸어가야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논밭과 야산뿐인 골목길이라 밤에는 우범지대였다.
송양이 귀가하지 않자 송양의 아버지 송길용 씨는 송양의 친구들에 전화를 했다. 친구들은 “송양이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고 말했고, 송씨는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송양이 돌아오지 않자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처음엔 ‘단순 가출’로 처리했다가 사건이 발생한 지 3일이 지난 후에야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송양이 탑승했던 버스 기사는 “밤 10시 15분경 송양이 도일동 하리 입구 도일주유소 앞에서 내리는 것을 기억한다”며 “술 냄새가 나는 의문의 남성이 송양과 함께 내렸다”고 경찰에 증언했다.
버스 기사에 따르면 당시 이 남성은 오리털 파카에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버스 기사가 “어디를 가느냐”고 했더니 이 남성은 “도일동 하리부락”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버스기사는 남성의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고, 버스 안에 CCTV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경찰은 논밭, 갈대숲, 하수구, 산 등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결국 버스에서 하차했을 때가 송양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며, 27년이 지난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납치 및 인신매매 사건으로 추정되던 이 사건은 2014년 2월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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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을 털어 전단과 현수막을 만들고, 딸 사진이 붙은 화물차에 세간 살림을 실어 전국을 떠돌았다. 딸을 찾는 현수막은 서울 중심가부터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까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동안 두 사람은 소주와 담배, 라면으로 끼니를 채웠다. 두 차례 허리 수술을 하고 뇌경색을 앓으면서도 현수막 제작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병과 우울증을 앓던 송양의 어머니는 딸 실종 5년 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품 안에 딸 얼굴이 담긴 전단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아버지 송씨는 끝까지 송양을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송씨는 지난 2024년 8월 코로나19와 심장병으로 입원했고, 퇴원 후 며칠 뒤인 8월 26일 정오쯤 평택에서 운전하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차량과 충돌해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의 나이 71세였다.
나주봉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회장은 ‘YTN24’와의 인터뷰에서 “송씨는 생전 ‘내가 먼저 죽으면 회장님이 우리 혜희를 꼭 찾아달라’는 부탁을 남겼다”며 “지금 생각하면 나한테 남기는 유언이었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 회장은 “송씨는 평소에 즐기던 술, 담배 모두 끊고 ‘혜희를 못 찾으면 못 죽는다’고 (했다). 딸 찾는 데 그야말로 평생을 바친 딸바보, 최고의 아빠라고 부르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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