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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 연말 '개점휴업'은 옛말…日 진출로 분주한 VC 업계

박소영 기자I 2023.12.07 05:26:16

일본 스타트업 발굴에 집중하는 국내 VC들
우호적 회수시장·성숙한 초기 스타트업 즐비
스타트업도 VC 투자 받고자 일본 진출 늘어

[이데일리 박소영 기자] 통상 국내 벤처캐피털(VC) 업계의 연말은 ‘개점휴업’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한산하다. 한해 투자를 마무리하고 대부분 연말 휴가를 떠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업계는 일본 출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VC 업계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에 이어 일본을 글로벌 타깃으로 삼은 데 따른 움직임이다.

VC 관계자들은 실제 일본 현지를 두루 둘러보며 시장 분위기를 파악하는가 하면, 기술력이 뛰어난 현지 투자처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엔화 약세로 인해 기업 체감 몸값이 떨어지기도 했고, ‘성숙한 스타트업만이 일본 현지 투자사들의 선택을 받는다’는 일본의 보수적인 VC 문화도 한 몫 거들고 있다. 투자처만 잘 팔로우하면 안정적인 엑시트(투자금 회수)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사진=아이클릭아트)
하반기부터 시작된 일본 스타트업 발굴 러쉬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VC 업계 임직원들이 연말 일본으로 속속 출장길에 나서고 있다. 팀 단위로 현지 시장 조사에 나서기도 하고 심사역 개개인이 일본 현지 스타트업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는 비단 심사역에 해당하는 일 만은 아니다. VC 대표급은 보다 효율적인 일본 투자처 발굴을 위해 현지 VC들과 협업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국내 VC 업계가 일본 시장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올해 하반기부터다. 일부는 현지 투자사와 조인트벤처(JV) 설립을 고민하는가 하면, 아예 현지 법인 설립을 고려하는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문화와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현지인만큼 높지는 않다보니 대부분은 현지 투자사에 출자하는 방향을 선호하고 있다. 한 예로,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일본 DNX벤처스가 운용하는 벤처펀드에 출자자(LP)로 나섰다. 이를 통해 일본 현지 네트워크 구축은 물론,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기업 등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포트폴리오사의 일본 현지 진출을 적극 지원하는 사례도 적잖이 보인다.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적인 KDB산업은행은 자사 벤처플랫폼 중 액셀러레이팅을 담당하는 KDB넥스트원(NextONE)을 통해 보육기업의 일본 현지 진출을 돕고 있다. KDB넥스트원 프로그램의 위탁운용사 씨엔티테크는 지난 10월 일본에서 로드쇼를 개최, 스타트업 4곳의 투자 유치·바이어 미팅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최근 개최된 사내 행사에서 내년 넥스트원 추진방향을 이야기하며 “(내부에서) 일본 전시회 참가로 효과를 본 부분이 있어 정례화가 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일본 현지 기관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기업가치 높여 유니콘 만들기 좋은 환경

그렇다면 이들 투자사들은 왜 일본에 주목하고 있을까. 업계 이야기를 종합하면 일본은 손대면 유니콘으로 거듭날 성숙한 기술 스타트업이 즐비하고, 안정적인 엑시트가 가능한 환경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 성장성 높은 해외 스타트업까지 투자 영역을 확대하고자 하던 도중, 일본에 관심을 가졌다”며 “성숙한 기술력을 보유한 작은 스타트업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AI 섹터가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이 분야와 관련해 성숙한 기술력을 갖춘 초기 스타트업이 즐비하다”며 “일본은 투자 시 보수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때문에 성숙한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고, 유니콘이 되기 이전이라도 상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로 투자 환경이 우호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엔화는 3년전 이맘때 100엔당 1050원 정도에 달했지만, 지난해 중순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올해 초 950원대까지 떨어졌다. 하락은 지속돼 최근 며칠간 890원대에 달하고 있다.

투자금 회수가 좋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기업공개(IPO) 시장은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은 편이다. 때문에 투자 라운드를 차근차근 밟아온 일본 스타트업이라면 수월하게 상장 절차를 밟는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다만 기업가치가 낮은 수준에서 상장이 이뤄지다 보니 유니콘이 탄생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를 타개하고자 일본 정부는 2027년까지 유니콘 100개 달성을 목표로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이 점을 국내 VC들이 파고들어 알짜배기 스타트업을 발굴, 기업가치를 높이고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제 막 디지털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확장성이 크다는 이점도 있다. 일본은 팬데믹 이후에서야 소규모 단위까지 업무 환경의 디지털화가 급격히 도입됐기 때문이다. 개인 사업자·소규모 자영업자 대상 모바일 ERP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스타트업 페이워크의 손지인 대표는 “지난달에는 법이 개정돼 거래문서 전산화가 의무화됐다”며 “이에 일본 물류·IT솔류션 서비스 회사 KCEE와 대리점 계약을 맺고, 모바일 ERP서비스의 일본 총판 기업으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VC들의 움직임에 맞춰 각종 스타트업들도 일본 진출 준비에 나서는 모양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아무래도 해외 사업을 노리는 스타트업 가운데 일본 시장에 진출하면 액셀러레이터(AC)나 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수월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고 전하며 “국내보다 시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한국에서 물리적으로 1~2시간 밖에 걸리지 않다는 장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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